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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11. 2020

엄마 보고 싶지?

자가격리 6일 차. 나도 보고 싶은데 너는 오죽하겠니

추석 연휴 후반부는 마음 편히 휴식을 갖고 개인정비 시간을 갖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이번 추석 연휴는 명절 당일 끝나고 바로 업무에 복귀한 느낌이다. 아이의 시간표는 별도로 부과하는 시스템 (어린이집 등)이 없는 경우에는 주중 주말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직장인이 그토록 기다리는 '빨간 날'은 더더욱 없다. A 업무(실제 업무)와 B 업무(육아)의 비중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B 업무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선 즉흥적으로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거나, 공원에 가거나, 놀이터를 탐방하는 등의 선택지가 다양하면 도움이 되는데, 자가격리로 선택지의 폭이 줄다 보니 삶에 변칙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찾기 힘들다. 이번 격리기간을 통해 내가 밖에서만 많이 활동했지 집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많이 마련해 놓지 못했구나란 생각도 해본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게 된 지 벌써 엿새 째, 아이와 나는 서로의 호흡을 통해 어느 정도 하루 시간 계획을 합의해 가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낮잠시간을 충분하게 갖는 아이였지만, 집에만 있으면 낮잠 잘 생각이 없다.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전력을 다해 함께 논다. 낮잠을 안자는 대신 밤에 일찍 잠든다. 집에서만 노는 게 본인에게도 피곤한지 평상시에는 30-40분 뒤척이며 자던 아이가 눕자마자 3분 만에 잔다.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 않겠다 싶었는데, 아이에게도 아빠랑 노는 게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나 보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놀 때는 수준이 맞아서 서로 척척 놀았겠지만, 아이에게 아빠랑 노는 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자기 수준에 억지로 맞출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더 힘이 드는 걸까.


일찍 잠드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더 도움이 되는 건 3분 만에 잠에 든다는 사실이다. 나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기 때문에, 누워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오랜 시간을 있다 보면 내가 먼저 잠들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런 채로 아침을 맞이하면 하루를 날려버린 기분. 이 기간 동안 그런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저녁 8시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직 이삿짐도 반 정도밖에 못 쌌으니, 앞으로 저녁시간을 활용해 진행 속도를 올려야 한다.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모습 속에서 애써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는 표정이 간간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면 아무 일도 아니라면서 내색하지 않는 아이를 보니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시크하게 답변하고 다시 놀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않을까'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냥 꾹 참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상황을 회피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분명 대단한 도전일 텐데.


자기 전에 항상 아이와 엄마는 영상통화를 하는데, 시큰둥하게 통화할 때가 많다. 너무 졸리니 끊고 내일 아침에 통화하자는 아이의 말을 처음엔 믿었다. 영상으로 나마 하루 종일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엄마는 아쉬움 가득하며 끊는다. 통화 시작하자마자 졸리니깐 끊자고 하니 아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왜 전화하자마자 끊었어?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을 텐데"
"졸리니깐 끊었지!!"

그러고는 침대에 눕는다. 한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내가 슬며시 말을 걸었다.

"엄마 보고 싶지?"
"...."

아이의 얼굴이 울기 일보직전이 된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잠깐이지만 대성통곡을 한다.

"괜찮아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야 아빠도 보고 싶은데 뭐~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해."
"응..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아이는 엄마가 아예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는 천국에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병원에 있지. 아빠가 얘기했잖아 이제 아홉밤만 더 자면 엄마 볼 수 있어. 엄마는 지금 코로나랑 싸우는 중이야".


그래서 그랬던 건가.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 아이는 "엄마. 엄마 있는데 보여줘"라고 가장 먼저 말한다. 지금 있는 곳이 어제 있던 데와 같은지, 엄마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방에서 산이 보이는 풍경을 보여주고, 침대를 보여주고 화장실을 보여준다. 그럼 아이는 그다음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를 보면 눈물이 나서 영상통화를 못하겠으니 얼른 끊어 달란다.


좋아. 열네 밤과 아홉밤의 길이 감각이 네겐 막연할 수 있으니 눈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밤에 잠들기 전 아이와 함께 달력에 있는 날짜에 X 표시를 했다. 엄마가 오는 12일은 아주 큰 동그라미를 치고, 우리가 얼마나 더 있으면 엄마를 만나는지 두 눈으로 보여줬다. 아빠 거짓말하는 거 아니니 걱정 마.


전문가는 아니어서 사실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감정을 놓고 대화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억지로 참는 거 보단 얘기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비록 엄마는 코로나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지만, 아빠는 지금 너랑 계속 같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안부를 묻는 전화에 내가 너무 의연하게 대답을 하니 누군가는 내게 아무렇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그런 의도의 질문은 아니었겠지만 진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있는가. 가족은 강제로 분리되었고 지금 내가 모든 걸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도 내가 보고, 이삿짐도 내가 혼자 싸고 해야 하는데 말이다.  단지 아이가 편안하게 지내도록 불안해하지 않도록 평상시와 다름없는 즐거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그냥 맞서는 수밖에 없다. 나도 아내가 보고 싶고, 밖에 나가고 싶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싶다. 그냥 그런 마음을 감내하며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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