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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19. 2020

이렇게 맛없는 치킨은 처음일세

자가격리 11일 차. 아내의 주장을 이해한 순간

지인에게 받은 여러 개의 치킨 세트 중 하나를 오늘 쓰기로 마음먹었다. 소고기 뭇국으로 아이 저녁을 빠르게 먹이고 티브이를 보여주는 동안 나는 맘 편히 치킨을 먹고 싶다는 소소한 희망사항이었다. 장염 증상으로 이틀간 죽을 먹고 나니 배가 괜찮아졌는지 오늘은 자극적인 것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결정했다. 치킨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는데, 또다시 몸져누우면 문제가 되니 가장 기본적인 '후라이드 치킨'을 먹겠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죽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힘이 나질 않는다. 초콜릿, 땅콩, 콜라 등등 간식거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 죽만 먹으니 먹는 재미가 없다. 회사에서도 오후 3시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코카콜라와 몰티져스 초콜릿을 사 먹으며 당을 보충했는데, 군것질을 안 하니 영 머리가 작동을 않는 느낌이다.




"오늘도 죽 시켜줄까?"

"아냐 아냐. 여보, 오늘은 치킨 하나 시켜 먹어 보려고"

"아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그냥 집에 있는 거랑 해서 남은 반찬이랑 해서 먹을까..."

"그래도 먹고 싶은 것 먹어야지. 안 그래?"


우리 집에서 배달 주문, 배송 주문 담당은 아내다. 집에 소모품들이 떨어지거나 아이 옷을 살 때도 아내가 검색하여 빠르게 배송 주문을 넣는다. 집 안에 재고가 어떤 게 바닥났는지 금방금방 알아채고, 계절마다 아이가 입을 옷과 소품이 어떤 게 필요한지 아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아내를 전적으로 의지한다.


습관이 무섭다고 했던가, 자가격리 중에도 아이 물품, 이삿짐 준비 물품들이 필요하면 내가 모바일로 주문하기보단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핸드폰으로 물건을 제때 주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변명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생활치료 시설에서 격리 중인 아내는 이렇게 주문을 받는 게 나름 즐거운 눈치였다. 안 그래도 남편과 아이가 자가격리로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쓰럽게 생각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랬던 아내의 마음이자 엄마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특히 지난번 고열 사건 이후로 아내는 끼니마다 배달 주문이 필요한지 묻는다. 괜히 힘써서 국이나 반찬을 만들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고 말한다. 아내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자 나와 아이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내는 먹을 것이 늘 우선순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것을 먹으며 푼다. 퇴근 즈음엔 자신이 오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 꼭 이걸 먹어야겠다며 내게 선수 치는 카톡을 보낸다. 머릿속에는 뭐가 먹고 싶은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는 메뉴 선정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행여라도 내가 살을 빼야 하니 안 먹겠다고 말하는 순간 눈빛은 날카롭게 변한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표정이다.


"여보. 먹고 싶은 거 혼자서 먹어도 괜찮지 않아?"
"안돼! 혼자 먹으면 맛이 없잖아.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지!"


정말 먹고 싶으면 혼자 먹어도 맛있을 텐데, 내가 살을 빼려고 하니 견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안 먹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간헐적으로 있긴 했지만, 간절한 아내의 요청사항을 못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 스트레스받은 자가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돕는 것 아니겠나 하면서 말이다. 


모든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치킨이 도착했다. 평소 치킨을 많이 시켜 먹진 않았지만, 배달원이 문 앞에 두고 간 치킨은 따뜻했으며, 집으로 가지고 들어온 순간 맛있는 냄새가 내 식욕을 돋웠다. 혼자서 먹긴 많은 양이긴 하지만,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튀김옷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콜라 1.25L까지 있으니, 오늘 하루 나에게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한입을 먹었다.


그런데.. 맛이 없었다. 분명 배도 고프고 냄새도 좋은데, 한입 먹어보니 별 맛이 없었다. 아침부터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격리 후반부로 접어들며 찾아오는 체력적 정신적 지침이 원인인가 싶어서 억지로 몇 조각 먹고 나머진 버렸다.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가 왜 스트레스받았을 때 그토록 나와 함께 먹고자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 자체의 맛도 중요하지만, 함께 먹는다는 환경이 음식에 첨가되는 비밀 양념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에 나누는 대화가 그리웠다. 집에서 뭔가를 먹을 때는 항상 내 앞에 있었던 아내가 없으니, 맛은 반감되었다. 때로는 힘들다며 짜증 내는 말,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웃음이 나오게 되는 말, 아이도 합세하여 시끌벅적해지는 분위기 이 모든 요소가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요소였던 게 분명했다.  분명 고요하고, 평화로운 식사시간이었지만, 시끌벅적하더라도 세 가족이 한데 모여 장난치면서 먹는 그 시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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