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하루의 취향》
“내일 내 마음은 또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는 이 취향 덕분에 나다울 수 있었으니까. 근사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바로 그 취향이 오늘,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게 했으니까.”
- 김민철, 《하루의 취향》
얼마 전 책방으로 입고 문의 온 독립출판물 하나를 냉큼 받았다. 작은 책방이지만 열권의 문의 중 한두 권 입고 받기 때문에 나름 치열하다. 그러나 빠른 클릭으로 회신을 한 이유는 대학 때 토이의 ‘길에서 만나다’에 꽂혀 독립영화까지 제작했다는 제작자 소개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적 꼬꼬마 시절부터 좋아한 뮤지션이다. 조용히 좋아했지만 누구보다 좋아했던 토이. 처음 용돈을 모아 피아노 악보를 산 것이 ‘여전히 아름다운지’였고 처음 연주곡을 듣기 시작한 것은 ‘여름날’이었고 싸이월드 배경음악도 오랫동안 ‘뜨거운 안녕’이었다. 토이는 내 음악 취향을 만들어주었고 지금도 지속 시켜 준다.
취향은 자신을 드러낸다. 소비하는 것이 취향은 아니다. 칸트는 취향이 미를 판정하는 능력이라고 보았으나 미적 판단만이 취향은 아니며 부르디외가 사회적 차이로 인한 취향을 주장했지만 나와 너의 구분 감각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구별짓기를 위한 취향에 일부 공감하지만 취향과 계급이 완벽히 일치하진 않는다.
요즘 사회는 취향을 강요한다. 취향을 찾아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강요한다. 그러나 취향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과 나아가는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가공된 것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조금 촌스러워도 남들과 달라도 유행에 뒤떨어져도 된다.
라로슈푸코는 우리의 자기애는 우리의 견해가 비난받을 때보다도 우리의 취향이 비난받을 때 못 견디게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그냥 나를 인정하듯 나의 취향도 그대로 인정하자. 나를 나에게 꾸밀 필요도 없다. 남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다. 좋은 척 취향인 척하지 말자. 어차피 뭐 하는 척은 곧 들통 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