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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Aug 10. 2018

뜨겁고 시끄러운 1960년대 후반;

제 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1.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공동감독을 맡은 이본 파렐과 셀리 맥나마라는 관대함과 인류애 두 가지를 건축의 핵심과제로 규정하고 'Free Space(자유 공간)'이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자유 공간은 소외나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민주화의 공간이 되는 불확정적 도시 공간이라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서로 교차하고, 공간의 공유를 통해 집단의 정치적 잠재력을 일깨우고, 사람과 장소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건축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71명의 건축가와 63개의 국가관은 '자유 공간'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관 개막 2018년 5월 24일.

2.

한국관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을 주제 삼아 1960년대 후반의 한국 건축을 다시 보았다. ‘유토피아’나 ‘아방가르드’ 개념을 통해 시민 공간이 부재하던 시절에 만들에 만들어진 도시와 건축의 유산을 파해침으로써 건축의 보편적 가치이자 당위적 요구로 제시된 '자유 공간'에 답하고자 했다.  '자유 공간'이라는 중립적인 주제를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국가개발체제에 의해 시작된 한국과 아시아의 도시와 건축이 당면한 문제, 즉 공공영역이 실종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민적 능력과 공공영역의 복원을 고민하고자 했다. 반세기 전 대다수의 건축 프로젝트는 오늘날과는 달리 국가가 주요 클라이언트였고 그만큼 이상적이고 정치적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서구의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국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가 공공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특정 시기 한국은 한국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라는 국영 엔지니어링 회사가 거의 모든 국가 프로젝트를 전담했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수근은 그곳의 실권자(2대 사장)로 산업화와 근대화 시기 국가 만들기(nation-building)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시절 그의 작업은 지금 봐도 꽤나 이상적이고 정치적이었다. 개인의 연대기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어느 시기보다 과감하고 규모도 컸다. 박정희 개발체제는 김수근 팀을 통해 개발 이데올로기를 대단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싶었고, 김수근과 약관의 건축가들은 국가를 경유해 건축적 이상을 실험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은 한국 건축사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한 시기가 그렇게 열렸다. 우리는 기공의 일련의 작업을 ‘국가 아방가르드(state avant-garde)’라는 형용 모순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여의도 개발 계획 1968-1969년


경제 문화적으로 1960년대 후반은 박정희의 강력한 계획경제 드라이브로 조금씩 국가의 재정 지표와 국민의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고, 대규모 도시개발을 통한 국가 정체성이 만들어진 때이다. 동시에 서구 기술 문명의 도입, 도시의 발달과 도시 감수성의 태동,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태도의 변화와 이에 따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변화가 일어났고, 문화적으로도 서구의 ‘전위’ 개념이 수용되고 우리의 방식으로 실험되기 시작했다. 요컨데 1960년대 후반은 자유와 민주주의, 풍요와 개발의 욕망이 드라마틱하게 충돌하던 때였다. 김수근은 이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이념을 구축하려고 했다.


건축가 김수근과 김현욱 서울시장이 한강 개발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모습, 196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기획팀(이하 한국관 2018)은 산업화 초기 김수근과 김수근 팀의 생각-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건축 이념-의 족적을 추적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온갖 불협화음이 이 시대에 시작됐으며, 현대 우리들 역시 1960년대의 화두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그 시대가 오늘날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한 이유다. 그러나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50년 전의 기공의 작업들은 개발 독재의 부산물로 치부되거나 건축가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으로 간단히 재단됐다. 이들의 작업은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채 기억의 파편으로 남았다. 한국의 예술과 인문학은 1960년대에 처음으로 고유한 몸짓을 찾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지만, 그 몸짓과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잊히거나 낡아버렸다. 이 가운데 한국 현대 건축의 신화적 기원과 파우스트의 거래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까지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한국관 2018은 이 유령과의 대면을 통해 한국 현대 건축사의 맹점을 조명하고, 나아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봉합되어 있는 1960년대 후반 개발체제에 내재해 있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고자 했다.(1966년은 서울이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를 바탕으로 탈 발전국가, 탈 국민국가 시대의 새로운 정신과 시민적 공간을 국가-아방가르드의 유산과 폐허 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자 했다.   


3.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김수근 팀은 경부고속도로 기본계획, 소양감 땜 기본계획, 포항제철 입지 선정과 같은 대형 국토개발 프로젝트와 여의도 종합개발계획, 남대문시장 도시계획, 종로 3가 재개발, 한국 과학기술 연구소 본관 설계 등과 같은 도시 및 건축 프로젝트 그리고 제1회 무역박람회와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 같은 박람회 건축 등을 진행했다. 대부분 당시 20~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들로 이루어진 김수근 팀은 다양한 도시 문제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면서 건축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미래적인 건축을 하려는 시도 속에서 이들의 작업은 동시대 서구의 급진적 건축 실험과 유사하게 몽상적이었다. 동시에 군사-테크노크라트 조직에서 진행하는 개발 계획에 맞게 현실적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을 경유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고, 그만큼 그들의 작업은 이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었다. 급격한 인구 증가, 도시 팽창, 자동차 증가 등의 실증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작업했다. 비록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김수근 팀의 도시계획은 서울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한국기술개발공사 아카이브 전시장


이번 전시에서는 김수근 팀 작업이 갖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그들이 주도한 한국 도시 건축의 대표작 가운데 <여의도 마스터플랜> <세운상가> <엑스포 70 한국관>과 <제1회 무역박람회(1969년)> 등을 선정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기능적인 토지 이용, 입체적 공간 이용, 위계적 도로망, 녹지와 공원의 확보 등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을 담았다. 그러나 김수근이 기공을 떠난 후 기술 관료적 해법과 교차하고 타협하면서 여의도는 군사 퍼레이드를 위한 극장과 주거/사무공간이 뒤엉킨 무미건조한 장소가 됐다. <세운상가>는 소개 도로에 형성된 슬럼과 사창가를 정리하기 위한 외과 수술 같은 도심 재개발을 상징했다. 낙후된 도시 문제를 복합용도 건축의 입체적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건축적 모더니즘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세운상가는 지난 50년간 역설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지금 다시 세운상가는 개발의 열풍 속으로 들어가 있다. 주변 지역은 재건축을 위해 철거가 진행 중이다.)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은 건축적 탈근대건축을 위한 시도와 현실적 산업화 사이, 건축가와 예술가가 그리는 미래와 국가가 강요한 전통 사이에 표류한 국제적 이벤트이기도 하다. <제1회 무역박람회>는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이라는 주제로 경제 발전을 과시하고 그 풍요를 약속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구로 박람회의 가설 구조물이 사라진 뒤 이곳은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터가 됐다.  그리고 현재는 소수민족(중국동포, 조선족)이 주축이 된 중국식 집거지로 변모했다.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 전시장 모습

4.

이 전시는 1960년대 후반 한국기술개발공사의 작업을 근간으로 한 상상된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국가 주도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한 김수근과 그의 팀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하고자 젊은 건축가와 예술가 7명(팀)에게 새로운 작업을 의뢰했다. 한국의 도시건축계획의 유전자를 보다 면밀하게 재조명하고, 건축가와 국가의 관계가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적 실천의 단초가 되기를 바랐다.


건축가 최춘웅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통해 이상 도시의 잔해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자유 공간의 가능성을 <미래의 부검>을 통해 전했다. 여의도 양끝(시청과 국회의사당)을 연결하는 중앙의 공중 데크를 기반으로 한 시민공간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미래 자유공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성우(N.E.E.D)는 주변과 지속적으로 관계 맺으며 전면 재개발을 다시 견제하는 거대 구조물인 세운상가(1967년)의 새로운 역할을 <급격한 변화의 도시>를 통해 그렸다.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역에 새롭게 불어닥친 개발의 압력을 제어하며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파제의 역할을 세운상가가 여전히 맡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설계회사(강현석+김건호)는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관을 근거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함께 사는 한국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빌딩 스테이트>를 통해 보여줬다. 현재의 척박한 상황을 미래의 그림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자 미래학 세미나라는 집단을 만들고, 현상학적인 해프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시도를 새로운 복원의 방식으로 복기해보려고 했다.  바래(정진홍+최윤희)는 제1회 무역박람회(1969년)를 대상으로 엄혹한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밀려나 비가시적인 존재로 남은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의 공간과 삶을 추적한 <꿈 세포>를 선보였다. 산업화와 산업단지의 빛나는 미래와 그 꿈의 짙은 그림자인 공단 배후지인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이주민들의 삶이 담기 조형물을 통해 21세기 산업공간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서현석의 <환상도시>는 구현되지 않은 ‘자유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극적 장치로 삼아 1960-70년대에 이루어졌던 근대화의 궤적을 추적했다. 당시 20대 약관의 건축가들에 의해 진행된 여의도 개발계획의 결정적 순간을 잡아보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통해 건축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관객에게 물어보고 있다. 식민지배와 이념갈등의 여파로 반토막난 국가에서 태어나 10대에 혁명과 독재를 경험하고 대학에 입학한 여성 화자인 정태순을 통해 서울이 어떤 곳인지를 묻는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1960년대 기공의 네 프로젝트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참조 점들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기법을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한 김경태의 <참조점>이 건축가의 작업과 함께 전시됐다. 이와 함께 한국관 2018에서는 반세기의 역사를 잇는 상징적 이벤트로, 기공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원과 소설가 정지돈이 1968년과 2018년에 쓴 각자의 에세이와 소설을 낭독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김원 <여의도의 감상적인 하루> 퍼포먼스 5월 27일

5.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전은 50년 전 한국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아카이브와 오늘 작가들의 재해석 작업으로 구성됐다. 1960년대 후반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면서 유토피안적 도시와 건축을 상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미완의 계획안 속에는 ‘자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고, 역설적인 맥락에서 오늘날 도시와 건축 문제의 뿌리에는 김수근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근대 건축 초기 세력의 반동이 촉매로서 섞여있었다. 이 전시는 이런 유토피아를 위한 실패한 시도를 발굴하고 오늘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그동안 잘 다루어지지 않은 시대와 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자 했다. 개발체제의 프로젝트와 건축가들의 유토피아적 열망을 함께 다룸으로써 한국 건축이 직면했던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촉발하고, 산업화와 민주주의로 양분된 시대 인식을 극복하고자 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잊힌 과거의 유산을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삼아 혁명적 도시 공간이 무엇인지 부서진 아방가르드의 잔해 속에서 찾고자 했다. '자유 공간'을 상상한다는 것은, 도시 공간의 현재에 욕망을 투사시킨다는 의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숨겨진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읽어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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