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회사들이 경쟁하는 나라들은 어떤 나라이고 어떻게 경쟁하고 있을까?
지난 시간에 한국의 철도 경쟁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철도 경쟁체제가 왜 효과적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효과적으로 철도 경쟁체제가 작동하는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이고 어떻게 경쟁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철도 경쟁체제가 민영화와 함께 언급되어 같은 차원의 개념들 인것 처럼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제로 완전한 민영회사간의 경쟁이 있는 나라는 일본정도에 불과하고 국영철도기업과 민간기업,또는 국영철도기업간의 경쟁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경쟁분야: 고속철도
- Trenitalia (국영철도기업)
- ntv (민간철도기업)
스페인
경쟁분야: 고속철도
- renfe (스페인국영철도기업)
- ILSA ( 이탈리아국영철도+AirNostrum 합작회사)
- SNCF (프랑스국영철도기업)
오스트리아
경쟁분야: (준)고속간선철도
- ÖBB(오스트리아국영철도기업)
- westbahn (사모인프라펀드가 출자한 민간철도운영회사)
일본
경쟁분야: 일반철도
- JR Group (민영화된 최대철도회사)
- 오오테사철 16사 (민간철도회사로 존속해온 대형철도회사)
일본의 경우 경쟁의 양상이 유럽 국가의 철도회사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노선, 속도, 정시성, 요금등 철도회사로서 양보할 수 없는 서비스 경쟁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일본 철도회사들은 철도운송 서비스 그 자체보다는 부동산 개발, 유통등 부가 사업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 경쟁도 이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일본의 철도회사들은 각 회사들의 주력노선 연선을 살기 좋게 만들어 이곳에 인구를 유치하는 다른 차원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몇몇 노선의 경우 같은 노선의 선로 내에서 복수의 철도 회사가 열차를 운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경쟁이라기 보다는 노선 확장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서울 지하철 4호선과 안산선의 사례, 서울지하철 1호선과 경인-경부선 직결사례)
그럼 한국에 도입되었던 경쟁사례인 KTX와 SRT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무엇일까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사례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의 사례는 한국의 현재 모습과 닮아있고,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나라가 경쟁체제를 완성했더라면 도달할 수 있었을수도 있을 이상과 닮아있을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는 트렌이탈리아(Trenitalia)가 1992년 고속철도 서비스를 시작하여 2012년까지 이탈리아 전역의 고속 네트워크를 독점 운영했습니다. 2012년부터 ntv사가 이탈로( italo)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밀라노-로마-나폴리간 노선의 고속철도 운영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고속열차를 탈일이 있다면 아마도 이탈로를 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행자의 특성상 시간표보다는 가격에 더 민감하고 피크시간대를 피해 약간이라도 저렴한 가격의 이탈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점이 이탈리아 고속철도 경쟁의 주요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렌이탈리아는 대도시 주변 지역을 잇는 일반열차를 운행하고 있고, 일반열차로부터의 환승여객을 처리하는 만큼 예전부터 좋은 시간대의 운행 슬롯을 보유해 왔습니다. 이에 비해 이탈로는 피크시간을 약간 빗겨나간 시간대 (이른 아침, 늦은 오후) 운행을 늘리고 피크시간대에는 트렌이탈리아의 80%수준 운행을 맞추고 가격을 약간 인하하여 가격 민감층을 흡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2020년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오픈액세스에 기반한 경쟁체제를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은 1992년 마드리드-세비야 노선을 시작으로 고속철도 서비스를 론칭했지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노선이 개통하는 2008년이 되어서야 진정한 고속철도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노선은 직선거리 약 505km로 고속철도 분야에서는 황금거리로 불리는 구간이며 개통직후 폭발적인 수요를 기록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마드리드-바르셀로나간 항공수요를 철도교통으로 전환하여 탄소배출을 줄이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카탈루냐지방의 수도 역할을 하는 바르셀로나를 더 밀접하게 연결하여 정치적인 통합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통근철도, 일반철도, 고속철도를 스페인 전역에 운행해야 하는 renfe는 이 노선에 충분한 좌석을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유럽의 오픈액세스 정책을 기회로 활용하여 완전한 경쟁체제로 국민들에게 편익을 만들자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프랑스국영철도 SNCF, 이탈리아국영철도와 스페인항공사의 합작회사가 경쟁에 참여했고, renfe도 저가 고속철도 서비스 브랜드(AVLO)를 론칭하며 선명한 경쟁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드리드-바르셀로나의 철도운임은 특정 구간 및 시간대에서 최대 80%이상 까지 저렴해졌고, 좌석 공급수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등 경쟁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프리미엄서비스(IRYO, AVE) 부터 초저가서비스(OUIGO, AVLO) 까지 이용객의 예산과 여행 목적에 대응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서 운영중인 고속철도 서비스 종류
서비스 수준 / 회사명 / 서비스 명 / 세부 서비스 등급 / 특징
프리미엄/ renfe / AVE / preferente, turista / 최고 수준의 열차 및 시간표(슬롯)
프리미엄/ ILSA / iryo / infinita, inicial superior, inicial / 열차 내 비스트로 서비스, 최고수준의 열차
저가 / renfe / AVLO / 단일서비스등급 / 저가, 좋은 시간대
저가 / SNCF / Ouigo / 단일서비스등급 / 단일 최저요금 체계
유럽의 오픈액세스 정책에 따라 동일한 경쟁체제안에 있었음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쟁의 양상은 꽤 달랐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운임인하 폭이 상대적으로 작고, 저가 서비스 등 국민이 체감할만한 서비스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에비해 스페인의 경우 좌석공급이 크게 증가했고, 저가서비스를 포함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가격인하가 이뤄졌습니다.
왜그럴까요? 그 이유를 찾으면 한국 경쟁체제의 실패 이유도 함께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첫 번째, 이탈리아의 경우 경쟁체제 도입전에도 트렌이탈리아가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경쟁체제 이전 코레일 또한 KTX 서비스 만큼은 안정적이고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경쟁체제 도입 이후 가격인하는 5~10%에 불과했으며 SRT는 좌석공급 부족으로 매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가격인하 체감은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경쟁체제에 대한 국민 수용성이 낮은 이유입니다.
두 번째, 스페인의 경우 고속선 병목현상이 거의 없어 경쟁체제를 통한 서비스 공급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주요 열차역에서의 병목으로 인해 열차 운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데 반해 스페인의 경우 거의 모든 고속열차 역 및 선로가 일반열차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공급에 제한이 덜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경우 오송-평택간, 광명에서의 일반선 접속구간에서의 병목현상이 심한 상태이고 이로인해 SRT공급이 늘지 못해 경쟁체제가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접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체제의 도입을 통해 달성하려는 국가적 목표가 달랐던 점 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제도적 허용의 결과 민간자본이 참여하면서 경쟁체제가 시작되었고, 스페인의 경우 좌석공급 증대, 가격인하, 항공수요흡수 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쟁체제를 도입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경쟁체제의 도입 자체가 목표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경쟁체제를 도입한 국가들의 사례를 비교해봤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철도 경쟁체제가 반드시 민영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 사례는 철도인프라는 정부 또는 공기업이 소유한 상태에서 경쟁체제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편인 다음글에서는 한국에서 경쟁체제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경쟁체제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