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철도 경쟁체제의 막을 내리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고속열차 KTX와 수서발고속철도 SR의 SRT가 통합의 길을 걸어가는것으로 보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486844
통합 정책은 새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두 회사가 만들어낸 고속철도 경쟁체제가 국민들에게 큰 효용을 주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시간의 문제였을 뿐 예정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제외한 철도 선진국에서는 이미 철도시장의 개방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일본과 같이 노선과 열차를 모두 소유한 민간 기업들이 경쟁하는 경우도 있고, 유럽국가 처럼 선로는 국영철도기업이나 국가기관이 소유하고 민간회사가 선로사용료를 내고 특정 노선을 운영하는 방식의 경쟁체제도 있습니다.
일본의 방식은 철도시스템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유럽의 방식은 공급 확대에 기인한 가격 인하를 가져왔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만약 KTX와 SRT 각자의 회사가 차별화된 서비스와 가격체계를 갖추고 고속열차 서비스를 제공해왔더라면 이번 통합 정책은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링크한 기사를 보면 KTX와 SRT 합병으로 인해 독점체제로 바뀌었을 때의 가장 큰 리스크는 "노조 힘만 세진다"는 점입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해 중복비용이 제거되고 좌석공급수가 늘어난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에 대해 이렇다 할 반론이 없는것을 보면, 주식회사 SR에서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일반적으로 합병을 통해 독점체제가 만들어지면 공급좌석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공급이 더 늘어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검증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토론대에 올라올 기회조차 없어보입니다. 자사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대해 SR은 국토교통부의 눈치를 보는것인지, 아니면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속철도 시장 개방을 통한 경쟁체제는 어설픈면이 있습니다.
매출관점에서 SR은 국토부의 노선배분으로 인해 수서역 출발 노선에 대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고속철도 시장 수요의 대부분은 서울을 기종점으로 하는 여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 분당, 동탄 시장에서의 수요를 독점하고 있음에도 이를 매출 상승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이는 해당 노선의 운임의 상한을 설정하도록 되어있는 철도사업법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운임의 상한이 낮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피크시간대 좌석의 공급이라도 늘려 매출을 늘려야 하지만, 코레일에서 리스할 수 있는 열차가 KTX의 좁은 좌석간격이나 역방향 좌석 이슈를 제거한 KTX-산천 모델 이었기 때문에 좌석 공급도 KTX-1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다 구조적으로는, 오송인근의 선로용량포화로 인해 고속 열차 추가 운행이 어려운 점도 매출 향상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용면에서도 철도시설공단에 높은 선로이용료 (매출의 50%)를 납부해야하고 코레일에서 리스한 열차에 대한 리스료 및 정비료 등을 내야해 그야말로 남는것이 없는 영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경쟁체제로 인해 생길 운임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막기위해 운임상한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운임상한이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어 철도 사업자들이 탄력적인 운임 설정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KTX, SRT 양쪽 모두 주말, 평일 오전의 매진행렬은 이를 반증합니다.)
경쟁체제의 핵심요소중 하나가 가격의 탄력적 설정인데, 그 기능이 제한되어 있으니 결국 경쟁체제는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체제라고 한다면 차라리 독점체제로 돌아가 운영의 탄력성이라도 높여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효용을 늘리는 편이 나아보입니다. (지금은 주식회사 SR의 수송원가가 코레일대비 훨씬 비싼 상황입니다.)
중앙일보 기사에서 통합이 불러올 유일한 문제점으로 지적된 독점체제 하에서의 노조의 영향력의 경우 철도사업이 애초에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어있어 타격이 크지않을 뿐만 아니라 항공, 버스 등 대체 운송수단이 많아 이로 인한 불편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독일,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철도 경쟁체제를 지속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경쟁체제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 보장되어야합니다. 코레일의 KTX가 수서역 발착이 가능해야하고, SRT가 서울역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은 기사에서도 보듯이 26년 실현될 예정입니다만, 그것은 통합을 앞둔 연습의 관점이지 경쟁체제 발전을 위한것은 아닙니다.
두번째는 운임상한의 현실화입니다. 각 운영주체가 탄력적인 운임을 설정할 수 있도록 50~100%의 Surcharge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운임이 해당 노선의 수요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업자가 새로운 방식으로 고속열차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장, 또는 전반적인 요금인상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운임체계가 시장가격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를 파악하는 노력은 별개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경쟁체제가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살펴 보고, SRT 또는 새로운 고속철도 사업자는 어떤 컨셉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