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네필 스타터 팩 03]
TRAVESSA DA QUEIMADA 이정표를 지나, 늙고 병들어 누워있는 육체 옆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누운 이의 후손으로 보이는(조카의 자녀인 듯한) 아이는 소방차 장난감을 가지고 있다. 알프레도는 아늑한 실내에 편히 누워있지만, 방에 들어와 아이를 다그쳐 내보내는 (왕가의 일원인 듯한) 이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덩그러니 남은 소방차 장난감과 흑인 소방관 레고를 보며 알프레도는 옛 생각에 잠긴다. 불에 대한 끌림은 어쩌면 이들의 혈통에 잠들어 있어 언제든 제 존재를 드러낼 때를 기다리는 중일지 모른다. 그리고 2069년의 알프레도는 50여 년 전의 그 자신에게 여전히 붙들려 있는 듯하다.
알프레도는 가상의 왕국의 왕자이다. 백인들로 이루어진 가문은 세상이 원하는 모습의 왕족을 전시하고 그를 즐기며, 거기서 얻어지는 이익을 당연시한다. 그들이 이성적이고 품위 있는 삶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벽에는 화가 호세 콘라드 로자(José Conrado Rosa)의 18세기 당대의 인종적 편견을 가득 담은 그림을 걸어두고서, 환경오염이며 화재와 같이 세상을 위협하는 일들이 제 소관이 아닌 양 구는 것이다. 이러한 지배층의 모습은 역겹고도 낯익다. 알프레도의 어머니가 식당의 문을 닫아버리는 순간을 목도하면서 영화의 감상자 또한 외면을 감각한다. 공감/이입할 수 없고 싶지도 않은 대상을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문을 열어젖히는 건 젊은 시절의 알프레도이다. 왕족의 특권을 포기하고 소방관이 되겠다며 연기에 기꺼이 휩싸이는 젊은이는, 이내 소방서로 몸을 옮긴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은 미학을 전공했다는 알프레도 앞에서 벌거벗은 채 온갖 명화의 포즈를 따라하고, 직장에서 춤을 추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게이 포르노와 판타지, 뮤지컬의 협력은 제법 유쾌하다. 알프레도는 훈련 과정에서 소방관 선배인 아폰소와 가까워지고, 잔불이 채 잡히지 않은 숲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왕자는 이 모든 것이 한때의 지나가는 꿈이었던 것처럼, 제 운명을 끝까지 거부하지는 못한다.
2069년이라는 미래에서 아폰소는 대통령이 된다. 그는 흑인이고 퀴어이며 무산계급 출신이나 주어진 운명을 거스른다. 여러 한계를 넘어 공화정을 수립하고 세상을 바꾸는 이가 된다. 그러한 계기 중에는 둘의 불장난 같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알프레도와 아폰소는 서로 부딪혀 불꽃이 튀는 시기를 같이했다. 그것이 송장 위를 떠도는 도깨비불이 될지, 세상을 뒤엎는 큰불이 될지는 개개인이 선택하기 나름이었다 해도 말이다.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João Pedro Rodrigues) 감독은 자연 안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동물적 성애를 줄곧 이야기해 왔다고 한다(시네필이 아니라서 다른 작품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 <도깨비불> 또한 동요(<나무, 친구(Uma Árvore, um Amigo)>)를 극의 초반부터 배치하여, 유년 시절 소나무숲에서 성적 욕망을 자각한 알프레도가 이후 아폰소에게 끌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그러하듯 당연한 일임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온전한 비극이거나 희극이기는 어렵다. 서로가 있었던 시절이 짧아 아쉽다고 추억할 수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옛 왕자도 그럭저럭 괜찮은 드라마를 살았다 할 수 있겠다. 장례식에서야 옛사랑을 마주할 수 있었다지만.
<도깨비불>은 꽤 재미있고, 종종 헛웃음이 터지며 간간이 슬픔이 비어져 나온다. 왕자가 자신의 기득권적인 위치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꿈꿨던 것은 퀴어인 그가 타인의 소수자성에 공감하기가 다른 특권층보다 수월했기 때문일 터다. 그러나 궁에 돌아간다는 현실적인 선택에 대해 타인이(연인이라 해도) 뭐라 할 수는 없다. 알프레도가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결국은 세상을 위하는 길임을 더 일찍 알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 결말을 맞았을 것이다.
+ QUEIMADA는 포르투갈어로 산불, 화전 경작을 뜻한다. 영어로는 Slash-and-Burn으로 표현되는데, 많은 것이 뒤바뀌는 상황, 일시에 제거되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TRAVESSA DA QUEIMADA는 지명 자체이기도 하지만 QUEIMADA로 향하는 길을 말한다. 팬데믹을 거치며 만들어진, 미래를 그린 판타지 영화이기에 극 중 대사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오프닝은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울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