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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an 06. 2022

<같으면서도 다른 여정의 시작>


휘운이를 키우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할 만했다. 


그래서 주변에 선배들한테 큰소리를 쳤다. ‘이 정도면 둘째도 키워 볼만 하겠던데요?’

선배들의 반응은 키우는 사람이 괜찮다면 또 낳아야지! 였다. 아내도 내심 둘째가 있었으면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산의 경험이 있는 아내에게는 다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은근히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벌이도 외벌이였고 둘째가 태어난다고 해서 ‘첫째처럼 사랑을 줄 수 있겠느냐’가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었다. 나도 내심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휘운이 때처럼 결국 운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애써 노력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지고 잉태가 되면 낳자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휘운이 출산 이후로 가끔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 모양이다. 당시에 작은 혹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아내 말로는 많은 여성들이 이런 작은 혹을 갖고 있고 병원에서도 몸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수술까지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 혹은 첫 번째 임신을 준비할 때도 있었고, 둘째를 생각하는 당시에도 여전히 붙어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혹이 임신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도 불필요한 것이지 제거 수술을 이야기했을 때 아내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휘운이가 만 2~3세 사이에 관계를 가지며 둘째를 생각했지만 생기지 않았다. 아내는 내심 낙담한 한 것 같았다. 이제는 나이도 더 먹었고 체력도 안되고 둘째는 임신조차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둘째가 안 생긴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 아닌, 이제 한 여자로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됐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도 있는 듯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느낌이다. 

그렇게 시간은 더 지났다. 휘운이는 유치원에 진학을 했고 나도 다시 일을 해볼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휘운이가 크면서 부모님께 부탁해도 조금 덜 미안한 단계에 온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일을 할 때 알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취했고 단편영화부터 습작을 만들기로 했다. 굳어진 감각을 다시 올릴 필요가 있었다. 아마 이때 부모님은 나에게 그냥 평범한 일을 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내 나이가 늙은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젊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신중했다. 

현실적으로 나는 영화감독이 될 가능성은 조금 희박해졌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0%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희박한 가능성에만 대고 나의 시간과 체력 그리고 가족을 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돈을 번다는 입장에서는 이 시대의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누구나가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기술이 특수한 기술이 더 이상 아니었다. 온라인에는 수많은 콘텐츠가 있고 촬영/편집 튜토리얼 영상도 차고 넘쳤다. 현실적으로 나는 이 시대에 내가 수년간 현장에서 배운 기술을 써먹는 것이 돈벌이에 좋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 단계는 순조로웠다.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조금씩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나는 몇몇 꿈을 쫓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국에 스탠드 업 코미디를 뿌리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하고 한 달 중 열심히 육아를 하고 며칠 시간을 내어 그들을 만나서 촬영을 반복했다. 이런 생활을 2년 가까이하게 된다.  

서울-부산을 들고 다녔던 촬영장비. 이 짐을 내려놓은 것도 사실 불과 얼마 전이다.


어느 날, 아침에 휘운이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문장으로 나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아빠 어제 자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왔어.”

“아 그래? 어떤 할머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머리가 뽀글뽀글한 할머니가 손에 갖고 있는 걸 나에게 줬어”

“손에 가지고 있는 거? 뭘 갖고 계셨는데?”

“치약이랑 칫솔” 


당시에 휘운이는 사물에 대한 생김새가 얼추 비슷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를 말하곤 했다. 내 추측으로는 치약과 칫솔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휘운이에게 그 할머니의 외모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 아이의 묘사가 정확하진 않았지만 휘운이가 만 1세 때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이자 휘운이의 증조할머니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태몽.

태몽은 임산부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나타난다고 들었다. 아이에게도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으나 휘운이의 태몽도 아빠인 내가 꾸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내의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겼다. 아내는 테스트를 했고 두줄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 좋고 우울한 감정이 아주 짧은 시간 간격으로 교차했다.  


<둘째> 

네.
둘째가 생겼습니다.
지금 이제 3개월이 막 지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행위 자체는 의도되었다고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휘운이가 태어나고 돌이 지났을 때, 둘째를 가지기로 하고 나름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잘 안되더라고요. 휘운이를 가질 때도 아주 순탄하지는 않았거든요.
크게 의학의 힘을 빌리진 않았지만 수정되는 것도 오래 걸렸고, 되고도 계류 유산을 했거든요.
마음은 갖고 싶으나 첫째도 노산이었는데 '둘째는 무리다'라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그랬던 둘째가 휘운이가 만으로 4세인 이 시점에 생겼어요.
태어나면 둘 사이의 터울은 일반적으로 5살의 차이가 납니다. 꽤나 큰 차이죠.
기분이 참 묘하기도 하고 아직 실감도 안 납니다.
기분이 묘하다는 것은 뭔가 4인 가족이라는 꽉 찬 구성(?)이 완성되었다는 기분도 있지만
전업주부가 되어 아빠 육아를 제대로 한 저로써는 걱정도 되기 때문이죠.

제 친구들을 보면 그냥 부모님이 하나 더 낳아라 해서 낳고, 그냥 어쩌다가 낳고 했지만
그 친구들은 ‘애는 엄마가 키운다’라는 구태가 있어서 그랬는지...
저는 제가 키웠기 때문에 심각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휘운이가 6살이라 저도 이제 다시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려고 열심히 시동을 걸고 있는 시점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주변 친구들 보면 둘째가 많습니다. 애기 말고 본인들이 둘째 아이입니다.
그 친구들은 항상 둘째의 설움을 토로했어요.
태생적으로 자기들은 첫째가 혼자라서 첫째 외로울까 봐 태어난 존재라는
스스로가 내린 무의식의 정의가 깔려 있어요.

아직 심장 소리도 듣지 못한 둘째를 가지고 벌써부터 아이가 커서 둘째의 서러움을 이야기할까 걱정부터 됩니다. 

또 제가 마음이 영~ 싱숭생숭한 것이 있어요.
둘째가 엄마 배 속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데 저는 온통 걱정뿐인 게 미안한 거예요.
휘운이를 가졌을 때처럼 엄마 뱃속에 대고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읽어 주지도 못하고 있지요.
대학을 졸업을 했는데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심정?
아니면 제대를 했는데 다시 입대하는 기분....
처분한 초기 유아 아이템에서부터 개월 별로 이유식은 언제, 휘운이는 언제쯤 손을 빨았고,
당시에는 뭐가 문제였고.. 언제 첫 열감기를 했고 등등을 블로그를 뒤져가며 찾아보고 있어요.

기쁨:불안의 비율이 4:6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를 가지려고 준비할 때는 키워 봤으니까
둘째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뿜 뿜 했는데 지금은 제 자신, 한 남자 인생의 제2의 도약을 준비하면서 '아.....' 하는 탄식도 솔직히 있어요. 그래서 또 둘째에게 미안하고요. 휘운이는 저의 사랑을 정말 제대로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만큼 혼나고 있지만... 근데 둘째에게는 휘운이 만큼 내가 물리적으로 사랑을 쏟아내고 싶어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 뭐 그런 게 자꾸 듭니다.

제가 저의 경력을 스스로 단절하면서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것은 저는 어쨌든 만 3세까지는 절대로 부모가 함께 해야 하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절약하면서 살았고요. 다른 아빠들이 하지 못하는 추억과 기억이 휘운이와 저 사이에는 아주 끈끈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그걸 저는 둘째에게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가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지금 벌려 놓은 일도 꽤 있어요.

둘째에게 '아빠가 잘 돼야 너도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것들 먹는다.'식의 합리화는 하고 싶지 않아요. 둘째도 부모가 붙어서 키우는 게 최고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나라의 육아 정책 핑계도 대고 싶지 않아요. 우리나라 복지가 언제부터 육아를 신경 썼다고요. 전쟁 통에도 둘러업고 피난 다니면서 책 읽히면서 키운 부모들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이제 내가 일을 할 테니 둘째는 당신이 키우라며 아내에게 넘기지도 못해요. 저도 나이를 5살이나 더 먹었지만 아내도 그렇고 더구나 노산한 여자에게 둘째를 보라고 하고 사회로 훌쩍 나간다는 게.. 마음에 걸리고요. 아내는 그냥 일을 쭉 하는 게 건강으로도 차라리 좋을 거 같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재 저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팩트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추가된 미션은 ‘잘 키워야 한다.’


하지만, 제가 다시 사회로 나가는 건 제가 컨트롤할 수는 있지요.

제 마음만 다 잡는다면요.

아…

새벽에 답답한 마음에 글로 생각을 좀 정리한다는 것이 좀 길어졌네요.
줄이겠습니다.


첫째 휘운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는 것도 뜸해져서 위의 글을 정말 오랜만에 올린 글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디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내가 저지른 일이라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대나무 숲에 올라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치는 기분으로 그냥 썼다. 네이버에 이 글이 또 메인에 오르면서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도 많이 표해 주시고 많은 댓글도 달아 주셨다.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 이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 친구들은 육아를 나처럼 한 것은 아니지만 둘째를 낳고 기른다는 것, 첫째의 반응 등, 많은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둘째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부부간의 일들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익숙함과 같은 무관심은 날로 짙어지는데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면서 싸움도 잦아진다는 것이다. 주부 입장도 밖에서 일하는 친구(남편)의 입장도 동시에 공감이 되었다.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의 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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