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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편히 살구에요 Jun 05. 2024

자기계발서, 눈을 멀게 만들다.

자기계발서 그 특유의 끓어오르게 하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20대때부터 자기계발서만 100권 가까이 읽었던 것 같다. 100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두 동일했다.


"절대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생산적으로 살아라."


책 100권에서 저 메시지를 흡수하고 나니, 최고의 가치는 생산성이라는 사고방식이 세뇌됐다. 무언가를 쉽게 흡수하는 나는 강박 수준으로 생산성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다.


자기계발서에서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쓰레기 취급한다. 그들은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게으른 사람이었다. 패배자가 될 운명이다. 반면 인생을 처절하게 갈아넣는 사람들만이 목표에 도달한다고 했다. 오직 그것만이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갈아넣었다.


자기계발서는 휴식을 거의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인생의 목표는 생산성인데, 휴식을 통해서는 쓸모있는 게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휴식에 대한 강한 죄책감을 갖기 시작했다. 휴식하는 시간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매일 뭔가를 배우거나 일을 했다. 쉬는 날에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연락이 오더라도 되도록이면 피했다. 24시간 낭비되는 시간이 없게끔 촘촘히 시간표를 짜두고 그것에 맞춰 살려고 했다.


휴식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심지어는 죄책감을 갖기도 했다. 시간이 아까워서 군생활 2년 동안 외출을 3번밖에 안나갔을 정도였다. 외출 나가면 사람들과 게임하고 술마시며 즐기게되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던 거다. 생활관 사람들이 모두 외출했을 때 나는 생활관 안에서 자기계발 했다. 휴가를 나가면 친구들을 안만나고 부모님 가게 일을 도왔다. 일일 아르바이트를 갔다. 휴식은 지독한 낭비니까.


만약 육체가 휴식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뭔가를 생산해야만 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뭔가 배울점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만약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리 즐겁더라도, 만남이 실용적이지 않다면 만나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배울 점이 있는 콘텐츠들만 찾아다녔다. 실없이 하하호호 하는 콘텐츠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넋놓고 있는 시간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었다. 24시간 뭐라도 배우고 생산해야했다.


인간은 인생을 향유할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향유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내 몸과 정신은 그저 목표를 이루기위한 수단이자 도구였다. 맹목적으로 목표만 지향하는 로봇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주인공 '그레고리'는 어느날 벌레가 되며 쓸모가 없어진다. 더이상 존재가 아니라 쓰레기가 되어 버림받는다. 생산성을 잃은 존재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나를 존재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니 내 삶은 쓸모가 있냐 없냐가 중요해졌다. 나는 생산적이어야만 했다. 생산적이지 않다면 나는 나를 가혹하게 대했다. 뺨을 때리기도 하고 욕을 박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정도를 살다보니 지치고 병이 났다. 병이 나니까 살기위해 주변을 둘러보게 되더라. 주변 친구들을 보니 신기했다. 친구들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하기 위해 중간중간 쉬어주는데, 친구들은 놀기위해 일을 하는 같았다. 나는 일이 인생의 목적인데, 친구들에게 있어서 일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고 내게는 여유가 없었다. 나는 괴롭고 병까지 들어버렸는데.... 그들이 훨씬 좋아보이고 행복해보였다. 인생을 꽤나 즐기며 사는 지인물어본 적이 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걱정없이 자유롭게 즐기세요?"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다가려고. 장자처럼" 


이런 삶의 태도가 있구나. 자기계발서에서 가르치던 삶의 태도가 어쩌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묻기 시작했다. 정신분석 심리상담을 받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철학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배웠다. 암 말기로 곧 죽는 사람의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보면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 삶은 굉장히 매몰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더 넓고 행복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바로 인생을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라는 걸.


사실 자기계발서는 기득권의 착취서라고 볼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죄다 기득권층이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려주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너희도 열심히하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어'


'너희가 성공하지 못한 건 너희의 노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도태되고싶어?'


그렇게 노동자들에게 드라이브를 건다. 사람들은 의욕이 붙어서 악셀을 밟고 갈아넣는다. 그럴수록 이득을 보는 건 기득권층이다. 악셀을 밟은 노동자들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다양한 문제에 시달린다. ,디스크,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것 말이다. 종종 뉴스에서 대기업 직원들의 자살 건이 나온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운좋으면 임원이 되겠지만 말이다. 정말 운좋으면.


회사는 이러한 모양새를 사실 아주 좋아한다. 회사는 하나의 배, 직원들은 노를 젓는 노잡이들이기 때문이다. 노잡이들이 배를 빡세게 굴리면 배가 아주 빨리 간다. 직원들이 일을 빡세게 할수록 회사가 부유해진다는 거다. 그러나 노잡이들은 그렇게 10여년 정도 일하다가 지쳐서 떨어져나간다.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노잡이로 대체하면 된다. 착취하고 버리는거다. 자기계발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기득권층의 착취서라고 볼 수 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서 책을 집었지만 결국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 현대인들은 성공이라는 말에 너무 매몰되어있다. 자기계발서는 거기에 기름을 붓는다. 돈과 건물, 성공 등을 맹목적으로 쫒게 만든다. 인생의 의미가 그런 데에 있다고 믿게 만든다.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멀게만든다. 


좋은 책은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하는 성공 등의 가치, 그 너머의 것을 보게 만든다. 철학, 문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철학, 문학 등을 읽으며 넓은 시야를 갖길 바란다. 나역시 풍요롭게 살기위해 그렇게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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