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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레이 Sep 11. 2020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얄팍하고 심란한 그림 에세이


프롤로그




"난 정말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도 냉정하고 단호한 표현들을 자주 내뱉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물론 그 칼날 같은 성향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는 편이다. 예전보다는 훨씬 무뎌진 채로 마음속 깊숙이. 자만이 넘치던 그때는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때로 어떤 일들은 겪어보지 않아도 확실한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설사 내가 어이없는 상황을 겪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기에 '상식적인' 선에서 잘 대처하며 나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대와 달리

나는 그냥 바보 멍청이였고, 때로는 참 나쁜 인간이었으며, 상당히 자주 병신 같은 호구였다.



묵은지처럼 익어가는 세월을 직접 겪어보니, '그럴 것이다',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성급한 확신이 얼마나 건방진 자만이었던가. 나는 내가 예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기대했던 번듯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 오면 나는 '이렇게' 대처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나는 사실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용서할 수 없는 경우가 점차 늘어갔고,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나를 버릴 수가 없으니 어떻게든 이해해야 했고, 스스로를 안아주고 감싸주어야 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기대 이하의 나를 대변해줄 근거와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관계 부적응자여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 속에 내재된 어떤 특성 중 하나가 나에게서도 좀 더 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들이 그저 원숭이의 피가 흐르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많이 편해질 것 같았다. 나는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더불어 타인을 향한 간장 종지 같은 마음의 그릇을 키우고도 싶었다. 까칠하기 짝이 없는 내 비위를 시시때때로 자극하는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모습과는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간 살아오면서 뚜렷하게 각인된 나 또는 타인의 '다른 모습'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얄팍한 심리학'에 기대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과거의 이상했던 나를 변론할 것이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타인을 대변할 것이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들을 통해서 그때의 그들을 이해해보고 공감해보려고 한다. 그런 과정들이 나에게 작은 치유와 평안함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가 나를 설레게 한다.


누구나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artwork by LazyRay 2020



내가 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상처 받지는 않을까? 스스로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드러낼 것이다.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가도 빛이 너무 들이치면 금세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틔운 싹이 어떤 식으로든 씨를 흩뿌릴 수 있기를 artwork by LazyRay 2020



그래도 용기를 낼 줄 알고 일단은 저질러보는 것이 내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이니까. 이렇게 시작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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