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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둠칫

수선(修繕)의 사전적 정의

- 낡거나 헌 물건을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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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생성형 A.I., 양자컴퓨터, 로봇이 시장을 점하려고 우사인 볼트처럼 사방으로 내딛는 오늘날, 수선은 따분하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허름한 창신동 뒷골목,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먼지 가득한 골방에서 바짓단을 고치는 구부정한 등이 떠오른다. 을지로 대림 플라자 근처 허름한 전파상에서 너트와 볼트를 조이고 푸는 센 머리가 떠오른다. 너무 센티....한 의견일 순 있지만, 적어도 ‘초고속’, ‘효율’, ‘갓성비’를 외치는 오늘날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Chat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클로드 등등이 각축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에, 나는 조용히 테이블 앞에 앉아 옷을 수선한다. 그것도 멀쩡히 (정년이 보장된) 국립예술단체를 다니다가, 180도 틀어서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다가, 이제는 수선을 한다. ‘수선’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 생각의 바다에서 유영하지 않던 단어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을 한다. 어색한 단어 조합이다. 수선이 보인다니... 수선은 원래 수려한 손놀림으로 감쪽같이, 빠르게 상한 옷을 원복하는 행위가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대놓고 수선한 흔적을 총천연색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 그것도 안단테 콘 쿠라(걷듯이, 그리고 돌보듯이, 찾지 마시길. 내가 조합한 단어다). 원래 수선은 바느질 부위, 간격 등이 고르고 정확해야 하는데, 내가 사람들과 수선 방식을 공유하면 열이면 열 다 개성 넘치게 삐뚤하고 개성 넘치게 근사한 수선작업물을 보여준다.


“수...선을 한다고?”


오랫동안 재직한 예술단체를 떠날 때 들었던 “왜”만큼, 내가 선택한 ‘수선’에 대해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하나하나 붙들고 장황하게 설명하면 그제야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근데 그걸로 돈벌이가 돼?”


쥐뿔도 없고, 과거의 (돈을 그나마 모았던) 내가 오늘날의 나에게 (투자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경험이 쌓인다는 건 예전보다 겁을 덜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빌려 수선을 하기까지 내게 떠올랐던 단상들, 경험들, 그리고 결심을 기록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