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옷장 속 러시아워 9호선

by 둠칫


“소비는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옷을 좋아한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그냥 내 마음을 훔치는 특정 옷 스타일에 꽂히는 편이다. “둠칫은 참 옷을 독특하게 입지.”, “둠칫님, 둠칫님 옷을 팔 것 같은 가게를 발견했어요. 사진 보내요~”, “둠칫아, 그 옷 나한테 팔아라. 무대의상으로 쓰게.” 왕왕 듣던 말이다. 따라 입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사람에겐 환경이 중요한데,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직장은 나에게 치명적 환경이었다. 방앗간을 맴도는 참새처럼 점심시간만 되면 (나의 직장인)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 옷 가게 탐방을 했다. 물론 구경만 할 생각으로. 혹시 이런 심리학 실험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피실험자에게 “쇼핑 목록”을 보여주니 뇌파보다 손가락 근육이 먼저 움직였다는. 우리는 머리로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했다고 믿고 싶지만,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구매 의사가 정해진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는 쪽이다. 이성을 믿었건만, 늘 결과는 무의식의 승리였다. ‘저 옷이 꼭 필요해?’라고 반문하기보다는 ‘어. 나한테 없네.’라는 뒤늦은 핑계를 대며 손에 달랑거리는 옷 봉투를 합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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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마우신 분이 내가 명동에 근무하던 시기의 명동 사진을 creative commons로 올려주셨다.)


옷장에 차곡차곡 포개진 옷은 어느 순간부터 골칫거리가 되었다. 선입선출은 꿈도 못 꾸고 맨 앞에 놓인 옷들을 계속 돌려 입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마치 중앙보훈병원부터 석촌역까지 느긋하게 앉아가다가 선릉역에 제때 내리지 못하는 9호선 통근자처럼 구석에 박힌 옷은 빛을 볼 일이 없게 된다. 게다가 계절마다 옷을 집어넣고 빼는 것도 짐이 되었다. 세탁소에 맡기자니 한 번밖에 안 입었는데, 그냥 넘어가면 내년에 묘한 냄새를 풍길 터이고. 그렇다. 옷은 얼핏 싸게 느껴지지만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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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환경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번 열어젖히면 이전에 누린 편리함을 다 반납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 그래서 환경 관련 서적을 펼쳐보길 차일피일 미뤘더랬다. 그러다가 명색이 작품개발팀장인데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인 환경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 건 직무 유기 같아서 주요 서적 몇 권을 탐독했다.


의식주의 하나인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필요보다 훨씬 더 많은 옷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90년대 패스트패션 선발대인 자라(ZARA)가 세계를 무대로 매장을 열기 시작한 이후, 디자인부터 구매까지 2주 만에 완성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가 본격 도래한다. 세계화로 인해 생산비를 최저로 낮출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지갑을 열게 되었다. 집 한 채 사는 건 어렵지만, 옷 한 벌 사는 건 덜 부담스럽고, 빠른 욕구 충족이 가능하다. 게다가 지나치게 빨리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작년에 산 옷들은 내다 버려야 한다.


이렇게 쉽게 사고 버리는 옷 한 벌이 원자재 확보에서 폐기까지의 여정 속에서 전 지구에 유독가스와 CO2, 미세플라스틱을 내뿜는다. 이게 옷을 좋아하는 내가 마주하기를 주저했던 현실이다.


정녕 개성 표현과 환경보호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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