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옷 한 벌의 한살이

by 둠칫

한 벌의 옷은 원자재 생산부터 최종 폐기까지 긴 여정을 거친다. 미국에서 기획되고 디자인된 옷이 인도에서 원자재를 구하고, 중국에서 가공처리되어, 방글라데시에서 재봉되면,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팔려나간다. 너무나 많은 과정과 국가가 엮여있어서 한 해에 몇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기관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유엔환경계획(UNEP, 2023)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에 대략 1,000억 벌 정도가 생산된다고 한다. 으응? 단순히 계산하면 인구 1인당 일 년에 12벌 이상을 소비하는 셈이다. 잠깐, 생산되는 모든 의류가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약 30% 정도는 소비자의 손에 닿지도 못하고 폐기된다. 패션 유행 사이클이 빨라질수록 이 비율은 올라간다. 대형 브랜드들은 유행을 예측하고 미리 옷을 만들지만, 재고가 나오면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대부분 소각하거나 매립하여 폐기하는 실정이다. 엄청난 CO2와 유독가스, 토양오염을 낳는 구조인데, 최근까지도 이런 행동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책임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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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생산자책임제(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는 기업이 제품의 “생산→소비→폐기” 전 과정에 대한 회수·재활용 책임을 지는 제도다. 유럽 연합의 경우 2023년 통과된 EU Textile Strategy(EU 섬유 전략)에 따라 올해부터 모든 회원국의 의류 생산자에게 폐기물 회수·재활용 비용을 부담시키는 법(EPR Textile Directive) 을 의무화하고 있다. 캐나다도 현재 EPR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부 분야(포장재, 플라스틱, 타이어 등) 에서 EPR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의류 분야는 아직 의무화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의류 생산비는 크게 기획·홍보비, 인건비, 재료비 세 분야의 비용을 바탕으로 결정되는데, 많은 의류업체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재료들을 저렴한 소재로 구성하는 실정이다. 가령 예전의 스웨터가 울 80% 이상이었다면 이제는 20% 이하로 구성하는 식이다. 옛날 할머니 스웨터가 더 좋은 옷이었다고요!


설령, 일부 의류업체들이 불편한 진실을 자각하고 제3세계 의류제조인력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류 생산을 줄이기 위해, 의류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자가를 높인다면, 이는 곧 다른 패스트패션 업체들에 추격당하기 십상이다. H&M이 30,000원인데 다른 SPA 브랜드가 20,000원이라면? 그렇다. 의류산업 스스로의 자성과 변화만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나 국제기구도 EPR처럼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지구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은 소비자가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옷’은 어떤 의미인지, 지구와 공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옷을 소비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나를 대입해 보게 된다. 나같이 옷을 좋아하고, 옷으로 나를 표현하는데 진심인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해서 말하자면,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데 무조건 옷을 사지 말라고 하는 건 즐거운 낙을 하나 뺏긴 기분이다.


가만, 꼭 환경을 위해 개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조건 ‘No’라고 외치기보다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는 재미있는 대안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보이는 수선(visible mending)’을 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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