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대 뒤에서 펼쳐지는 마법

by 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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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종사자들이 누리는 특권(?) 중 하나는 베일에 싸인 뒷무대(backstage)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에서는 모두가 약속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뒷무대는 정돈되지 않는 날것이다. 특히나 무대 리허설 기간에는 배우, 스태프, 의상, 장신구가 들고나며 정신 사나울 정도로 북적인다.


연극 프로듀서였던 내게는 이러한 무대 뒷모습이 익숙하다. 약 두 달 간의 공연 연습을 마치고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기 직전인 무대 리허설 기간에 의상팀은 제작된 의상들을 가져와서 배우들에게 실제로 입혀보고, 무대 조명을 받은 의상을 하나하나 확인해 본 뒤 열심히 뒷무대에서 수정한다. 수정하는 의상팀에게는 고역이겠지만, 구경하는 내게는 은근 재미있는 볼거리다. 연출이 너무 새것 같다고 의견을 내면 커피 물을 입혀 허름하게 만들기도 하고 배우들이 무대전환 시간에 입고 벗기 편하도록 단추를 벨크로로 교체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구매한 한 벌의 기성복이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의상이 되기도, 19세기 지식인의 후줄근한 셔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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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늘 무대의상을 탐냈던 것 같다. 특히 코발트 빛의 남자 주인공 코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 코트를 ‘가지고 싶다!’라고 열망하지만 어림도 없다. 극단 자산이라 돈을 줘도 구할 수가 없다. 언젠가 나도 돈을 모아 저런 의상을 디자이너에게 주문하리라.


오른쪽 왼쪽 길이가 다른 언밸런스드 스웨터, 항아리핏 치마, 천연 염색한 셔츠 등 남다른 추구미가 있었던 나에게 의상팀의 작업은 평범한 기성복에 개성을 입히는 즐거운 창작 방식이었다. 옷을 만드는 건 전문가 소관이지만, 내 옷을 취향에 맞게 고치거나 꾸미는 건 누구나 가능.... 한 거 아냐? 가만... 내 옷을 조금만 원하는 대로 고치면 더 애정을 가지고 오래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평소에 잘 안 입는 옷이라면 수선하다가 실수해도 본전이잖아.


사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로 옷을 만드는 것보다 부분적으로 흠이 난 옷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부활시킬 때 기발한 발상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연극을 올리면서 경험으로 깨달은 이치다. 직접 프로듀서로 작업한 공연과 팀장으로 관여한 공연들을 다 합치면 백 편이 넘는데, 그중에서 아주 드물게 모든 파트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시작할 때가 있다. 예산도 넉넉하고(정말 매우 드문 경우!), 연출진과 디자이너도 훌륭하고, 좋은 배우들이 참여하고, 공연장까지 완벽한. 그럴 경우 꽤 괜찮을 공연을 만날 수 있다. 반대로 큰 제약을 가지고 시작할 경우가 있다. 배우를 단 세 명만 써야 한다든가, 극장 한가운데 기둥이 박혀있다든가, ‘안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든가... 그럴 경우 모 아니면 도다. 망하든가, 정말 기발한 공연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온 기발한 공연들을 사랑한다.


옷도 마찬가지다. 목 하나, 팔 두 개, 다리 두 개인 인간을 위한 옷은 나올 수 있는 종류가 한정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소재를 다 주고 만들라고 하면 오히려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오른쪽 어깨 부분에 커핏자국이 있다든가, 허벅지 부분이 뜯어졌다든가 할 때 이걸 수선할 방법을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어진다.


다양한 수선 방식을 배워서 나만의 옷을 입겠다는 야심은 이상한 방식으로 뿌리를 내려 이 년 후에 일을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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