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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어린 May 25. 2023

조금은 안쓰런 나의  웃음보따리 복희에게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16)-산달의 곡우 편지

복희, 오랜만이에요! 제가 곡우 편지를 받은지 3주가 넘도록 답신을 못해 어느새 입하를 지나 소만이 가까워졌네요. 오기로 한 날에 편지를 받지 못해 서운했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과 염려를 했을 복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요. 


사실 번아웃이 왔었어요. 왜 뒷감당도 하지 못할 많은 일들을 모조리 손에 쥐었는지, 욕심이 많아 탈이 났던 거죠. 하나를 겨우 끝내면 다른 하나가 떡하니 앞에 서 있고, 그렇게 몇 개의 산을 넘는 과정에서 숨을 편히 내쉬기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결국 몸에 무리가 오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깊이 있는 대화를 집중해서 나누는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꾸 이런 모습을 반복하는 저의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하는데, 늘 뾰족한 해법은 잘 생각나지 않아요.


어제 하루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을 해보려 노력했어요. 친구와 전화도 하고, 볕을 쬐면서 산책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도 함께 했어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숨을 내쉴 틈이 필요했던 건가 싶어요. 그렇게 더 잠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보니까 주변에 과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혹사시키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그게 바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제 모습이겠거니 싶었어요.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복희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답장을 바로 하지 않았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더 막막하더군요. 갓 받은 편지를 읽고 난 후의 기쁨을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낸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복희와 제가 한 계절을 몽땅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었어요! 그건 마치 맛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 같았어요. 식은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변함없이 감질나는 그런 음식이요. 물론 밥이나 빵을 막 했을 때의 그런 따끈따끈함은 찾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몇 날 며칠을 묵혀 두면서 먹는 발효 음식처럼 예전에 못 보았던 것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지각도 밥 먹듯이 하고, 그러다보니 복희에게 준 말들도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다른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급하게 하는 요리들은 망하기가 십상이잖아요. 마치 제 글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가끔은 투정도 부리고,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요. 반면에 복희의 글은 정말, 뭐랄까요. 마치 지리산 같았어요! 제가 어떤 말을 편지에 담아서 보내든 그저 그것대로 품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그런 지리산이요. 복희가 편지에서 묘사해주었던 사랑 가득한 지리산 말이에요. 복희는 모든 편지에서 저를 있는 그대로 ‘기다려주고’ ‘감싸 안아주고’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이 편지를 써왔는지에 대해서 후회하고 자책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거든요. 다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펜팔을 충분한 감사와 온전한 솔직함을 담고 싶었어요. 저는 늘 그 두 가지가 참 어려워요. 내 삶에 온 모든 것들을 하염없이 감사해보려고 노력하는데, 늘 거짓감사를 드리는 것만 같아요. 누군가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은 늘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가 몹시도 아름다워 흉내내려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그런 상태로 겉으로만 소리를 흉내내려니 당연히 될 리가 없었어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여유로움과 꾸준함을 따라해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래야 한 음을 낼 때도 곧고 맑은 소리가 나고, 다른 악기들의 소리와도 듣기 좋게 어우러지더라구요. 언제나 가장 어려운 적은 조급함이에요. 지금의 나의 행동이 앞으로의 나를 어떻게 쌓아가고 있는지 상상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더라고요.


저의 말들은 어쩌면 그런 조급함으로 자아내어진 문장들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의 하루도요. 그러니 그렇게 모든 일을 혼자 다 해내려고 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나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서 헛된 것들을 좇아 흉내내었던 거에요. 그런데 그런 제 말들을 싯다르타의 법문으로 만들어준 건 바로 복희가 섬세하게 들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복희를 보면 저는 제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희같은 사람이 되주었나 돌아보게 돼요. 흉내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져요. 더욱 옹골진 진심을 담아 다른 존재를 대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어요.


복희가 전해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그 말을 같이 새겨보려고요. “삶은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다.” 식욕이 없고 무기력할 때도 번아웃이 왔을 때도 그 말을 되새기면서 산책하고 음악을 들어볼게요. 그나저나 이제는 식욕도 기력도 다시 돌아왔나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쯤이면 돌아왔어야 할텐데 말이죠. 흰개미님과 집을 공유한 경험도 지금 돌아보니 조금 웃기기도 하나요? 물론 복희의 고생은 유감입니다… 그래도 복희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늘 재밌어요.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거리가 많은지! 누가 복희더러 진지하다고 했나요?


참, 그리고 위안이 될 만한 사실 하나 알려줄까요? 제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싫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잘난 척 한다고, 재수없다고요. 성적도 좋고 발표도 잘했던 제가 샘이 났던 모양이에요. (제가 생각해도 조금 재수없긴 했어요.) 제게는 그게 큰 상처였던지 그 이후로 겁이 많이 생겼는데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래요. 누군가가 저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제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불쑥불쑥 튀어나오거든요.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사람들이 그때처럼 대놓고 제 욕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대놓고 욕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애정을 담아서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흠흠, 같은 욕을 들었다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복희, 아마 이게 제가 드리는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겠어요. 그동안 저는 괜찮은 펜팔 짝꿍이었나요? 그랬든 안 그랬든, 복희는 제게 최고의 펜팔 짝꿍이었어요. 복희가 제게 보여준 기다림과 진지함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요. 저는 지금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는 제주도에 와 있어요! 이곳은 바람도 많이 불어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계속 분무기를 뿌리는 것만 같아요. 내일이면 바다를 만나겠어요. 먹먹하고 향긋하지만은 않은 바다를요. 사랑하는 공간이 될 것만 같아요. 이 곳을 가득 담아 지리산으로 갈게요. 복희에게 보여드릴 햇살 담긴 웃음을 들고 갈게요. 안녕, 곧 만나요. 


양팔 들고 벌서고 있는 산달이, 사랑과 솔직함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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