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책 첫 이야기

스카이캐슬, 평균의 종말, 그리고 아이야 너의 생각은 어때

by 여름나무


일 년 전 한국의 부모세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SKY캐슬.


사진 출처: JTBC, SKY캐슬


아무리 허구인 드라마라고 해도 결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생각이 들기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궁금한 마음으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있어서 보는데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오는 모두가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인물 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두드리는 인물은 바로 영재이다.


1548054284355.jpg?type=w1 사진 출처: 네이버 뉴스


영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하고 부유한,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가정의 유일한 아들이다. 이 아들이 서울의대에 붙게 되었고, 이를 축하하는 파티(라고 쓰고 그 이면엔 서울의대를 붙게 된 로드맵을 얻고자 한 예서 엄마의 야망! 을 드러내고자 한 파티라고 읽는다)를 열며 이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런데 앞으로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가정이, 바로 이 서울의대에 합격한 사건을 시작으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서울의대에 가기까지 참고 또 참으면서, 겨우겨우 가리고 있던 곪아 터진 가정의 불화를 부모의 바람대로 자신이 서울의대에 붙게 된 이후 영재가 펑- 하고 터뜨려버린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들 잘 알고 있을 테니 자세히 풀지는 않겠다. 하지만 7화의 한 에피소드는 이야기하고 싶다. 7화에는 자기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일어난 부모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분노와 절망을 표현하는 아들에게, 애걸하는 엄마의 장면이 나온다.



"박영재! 너 정말 왜 그래. .... 너 내일모레 기말고사잖아.
너 정말 이러다 특목고 못 가면 어떻게 할 거야!"






물론 사랑하는 아들에게 창창한 미래를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특목고에 가고, 서울의대에 들어가고, 의사가 되고.. 이런 로드맵을 정해진 시간 내에 아들이 밟아가도록 옆에서 조력하는 것이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엄마 자신을 위한, 그리고 나중에는 아들이 평탄한 삶을 살며 그 값어치를 인정하고 고맙게 여길 '성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영재 엄마, 예서 엄마가 (너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말하고 있는 '성공'에 대한 신념이 무엇이기에 3, 4년 후의 미래에 아이가 서울의대를 붙는 것이, 아이의 '지금'을 희생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직장, 동료, 배우자, 나아가서는 인생 전체의 가치를 책임질 시작점이라고 믿는 신념이 아닐까.


이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는, 이런 신념으로 이끌어지고 있고, 그리고 그 결과로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만한 도약을 이루어낸 나라는 몇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eva-blue-42498-unsplash.jpg?type=w1 사진 출처: Eva Blue, unsplash.com


나는 지금까지 이 신념이 현시대를 살아내는 인간 모두의 마음속에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는 유전자와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의 모든 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신념은, 놀랍게도, 한 사람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현재의 21세기 사고에서는 수재들은 '평균 이상'이고 무능력자들은 '평균 이하'인 것이 너무 당연하고 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한 사람에게서 기인된 것이라는 얘기가 극단적 단순화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골턴은 거의 혼자 힘으로 인간의 가치는 평균치에 얼마나 근접한가에 따라 측정될 수 있다는 케틀레의 확신을 밀어내고 인간의 가치는 평균치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에 따라 더 잘 측정된다는 개념을 들어앉혀 놨다.
<평균의 종말> p62-63


그리고 이런 골턴의 신념을 이어받은 손다이크가 등장한다. 손다이크는 현재 21세기 교육 시스템이 운영되는 의도와 목적의 기반을 닦은 사람이다. 그는 대학이 "GPA 상위층과 표준화 시험 점수 상위층에 드는 학생들을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성적 상위층 학생들이 대학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을 택하든 그 직업에서 성공할 가능성 또한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 그의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평균의 종말, p89)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성공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이 두 사람에 의해 발전된 것이 나는 참 놀라웠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골턴과 손다이크 두 사람의 사고의 기반이 되게 하는 '평균의 시대--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시대'가 케틀레라는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p58).




케틀레에 의해 열리게 된 평균주의 시대가이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번창한 기업, 보다 저렴한 상품들, 전반적으로 인상된 임금, 불리한 출신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출세 기회 등이 그것이다(p92-93).


이렇게 지난 시대가 평균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개개 인성을 무시하고 정형화된 하나의 시스템만 우선시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구시대를 멈추고,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정거장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시대를 위한다면 말이다.


kevin-lee-99509-unsplash.jpg?type=w1 사진 출처: Kevin Lee, unsplash.com


그리고 이 정거장의 토대를 다지고 있는 선구자들이 이미 있다. 바로 피터 몰레나유이치 쇼다이다.


원래 평균주의 과학자인 몰레나는 네덜란드 명문 대학인 암스테르담대학교의 교수를 맡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퇴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그는, 평균주의의 반박 불가능한 오류를 찾게 되었고, "평균주의의 대안을 제시하고, 개개인의 이해에서 등급화나 유형화보다 더 적절한 결과를 얻게 해주는 실질적 방법"을 연구할 일종의 소명(calling)을 발견하게 된다(p106). 그러나 3년 뒤면 퇴임하게 될 몰레나에게 연구지원은 불가한 일처럼 보였다.


"위태로운 문제와 그 문제가 사회에 너무도 많은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죠.
<평균의 종말>, p107"



이런 그의 현시대에 대한 질문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확고한 믿음이 그로 하여금 '성공'이 보장된 자리에서부터 움직이게 하였고 그렇게 '개개인의 과학'에 대한 토대를 닦아나가게 하였다.


유이치 쇼다는 워싱턴대학교 교수로서,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기보다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맥락의 원칙 (개개 인성의 두 번째 원칙)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p158).


왜냐하면 모든 이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의 다른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p155).


이 부분을 읽으며 전성수 교수의 책인 '아이야 너의 생각은 어때?'의 글이 떠올랐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최상의 해답을 찾아가는 선택의 연속이란 의미이다. 정답과 해답의 차이는 하나의 정해진 답이냐, 풀어낸 답이냐이다. 해답은 하나가 아니라 많을 수 있고,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최상의 해답은 달라질 수 있다. ...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지금 현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최상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아이야 너의 생각은 어때?> p6-7



케틀레, 골턴, 손다이크의 평균주의 시대가 지나가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인 토드 로즈가 제시하는 것처럼 더 이상 학점 중심의 평균주의 기준이 아닌, 자격증, 성적 시스템의 혁신, 그리고 자율 결정형 교육 등을 통한 다각면의 기준을 통해 한 사람의 개개 인성이 학교, 직장, 그리고 전 인생에서 존중받고 인정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에 대한 설명은 직접 책을 읽고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기에 적지 않겠다.)




위에서 나는 현 대한민국의 대다수 학부모의 자녀 성공에 대한 기준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물었었다. 그리고 나는 감히 대답한다. 오로지 '성적'이라는 점수만을 통해 A(그것이 특목고이든, 서울의대이든, SKY대이든, 아이비리그이든, 하버드이든)에 가야만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기준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변하고 있는 시대와는 동떨어진 길을 걷는 '잘못된' 선택일 것이라고.


그러기에 부모 된 우리는 평균주의 "시스템에 대한 순응" 이 아닌 개개 인성 시각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고, 살펴보고, 인정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색깔에 맞게 선택하는 길을 신뢰하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렇게 우리 개개인 안에서 먼저 "평균의 종말"이 일어날 때, 평균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자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현 사회를 좀 더 강력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