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침묵이 더없이 반갑다.

경이와믿음 '하나님의 러브레터' Day 17

by 여름나무

[Day 17] 에스더: 그 누구도 내 계획을 막지 못해


"나는 너를 보살핀다. 그러니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인정해라.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찾아라.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열고 나를 찾아라. 그러면 우리는 사랑의 관계를 누릴 것이다." (p140)


"I care for you. Acknowledge Me by name. See Me in everything, including your worst torment and suffering, with the eyes of faith. And you and I together will enjoy a relationship of love." (p140)





마을버스 16번을 타면 합정역에 갈 수 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주고 총총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마을버스 16번의 대기 시간은 약 8분 내외.

이미 지나간 버스는 내 마음속에서도 보내고 여유롭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나 뜬금없게 느껴지는 한 질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라고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하림아, 그 사람이 무엇인가 특별하거나 유별났기에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미국에서 경험한 나의 고등학교 시절,

임신하여 배가 나온 채로 학교 복도를 걸어가는 17살 여학생을 본 적 있다.

어느 밤, 격노한 의붓아버지에 의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15살 여학생을 알고 있다.

누군가가 소지한 마약 신고로 인해 마약 검사를 한다며 전교생 사물함을 검사하던 경찰을 종종 마주했다.


임신,

죽음,

마약.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일들을 고등학생의 일상에서 실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특정 인물들을 향해 던지던 수많은 내적 질문들을 문득 마주하며 그때의 나에게 다시 묻게 된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오는 할머니를 위해 조금 더 기다리다가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하며 인상을 굳히기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가 한가득 실린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요리조리 피하다가도 버스 앞을 갑자기 무단 횡단하는 사람과 10분처럼 느껴지던 30초를 숨 막히게 대치하던 버스를 10여분 타다 보니 어느새 합정역 전 정거장인 남경장 정거장. 벨을 누르고 내려서 홀트 아동복지회 건물을 지나가던 차,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 여성 둘과 갓 돌이 지난 아시안 남자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걷고 있는 (부부로 보이는) 백인 커플을 지나쳤다.


정말, 나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림아, 그 사람들이 특별하거나 유별났기에 그런 일들에 처한 것이 아니야. 만약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우리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오늘 나를 사로잡은,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그때도 또 지금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마을버스 16번을 타고 있던 나와 다른 승객들을 비롯하여 지구를 밟으며 살아온 모든 사람들은 오롯이 본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슬픔과 아이러니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나는 임신한 채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야만 했던 그 소녀도, 딸의 생명을 앗아간 그 의붓아버지도, 사물함에 마약을 숨겼던 그 고등학생도 아니다. 나는 아하수에로 왕도, 와스디 왕비도, 하만도, 모르드개도, 그리고 에스더도 아니다. 나는 1987년 1월에 남한 서울에서 전도사인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의 첫 딸로 태어났다.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나 권리를 논함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나는 무엇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나는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며, 시간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 개입한단다.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소망 안에서 완벽한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나는 매일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또한 충만한 기쁨도 누리지." <하나님의 러브레터> p135


"나는 내 계획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단다. 내가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늘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모든 것을 활용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내 눈에 보이는 것 중에 많은 부분이 내 맘에 안 든다. 많은 부분이 나를 슬프게 하고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내 계획을 진행하는 데 이용한다. 내가 이용할 수 없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러브레터> p136


"그렇다면 하나님,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너를 보살핀다. 그러니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인정해라.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찾아라.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열고 나를 찾아라. 그러면 우리는 사랑의 관계를 누릴 것이다." <하나님의 러브레터> (p140)


나는 하나님이 환상이나 꿈, 혹은 벼락과 같은 목소리로 말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심장이 너덜너덜해져도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끝끝내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부모의 길고 지난한 여정을 통해,


식료품 가게에서 내민 체크카드 결제액이 부족하다는 소리에 정말 필요한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다시 내려놓는 상황이 아무리 부지기수라도 지역 유학생들을 불러 맛있는 저녁 한 끼 대접하는 것을 즐거이 선택하시던 엄마를 통해,


당시 생계를 위해 일하시던 금은방에서의 일로 인해 보드라웠던 손톱 밑이 굳은살 투성이에 잘 지워지지 않는 검은 때 범벅이던 40대의 아버지가 타지에서의 낯선 언어의 장벽과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장의 무게감과 같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석사과정을 마무리 짓고 졸업식장을 걸어 내려가시던 뒷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 나에게 묻고 계셨다.


후회와 상처가 난무한 선택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비참한 일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기로 선택할 수 있겠냐고. 오늘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외로우며 우리 안에서는 답을 발견할 수 없지만 이 광야를 이미 승리한 예수님을 믿으며 성령님과 동행하기로 선택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나의 모든 날에 하나님은 계속 묻고 계셨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되는냥 그들과 나를 갈라놓고 판단하며 허세 부리는 나를 침묵하게 하신다.


그리고 나는 이 침묵이 더없이 반갑다.



에스더1_1.png



@wonder_n_belief

@your_intermission

매거진의 이전글"도대체 어디까지"에 대한 그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