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숙살지기가 들어온 경신(庚申) 일진이라 그랬는지 집안의 더이상 안 쓰는 묵은 물건들을 소형폐기물로 신청해서 내다버렸다. 그중에는 10년도 더 된 노트북도 있었고, 고장난 냉풍기와 효과를 짐작할 수 없는 공기 청정기, 낡은 의자가 있었다. 게으른 탓에 새로 산 노트북을 두고도 옛 노트북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넓지 않은 원룸에서 공간을 답답하게 만드는 물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낡은 데이터의 먼지가 덕지덕지 쌓여서 모든 명령에 대해 완전히 버벅거리던 노트북을 포맷시키자 새로 태어난 듯 생생한 속도감을 보여주었고, 이걸 진짜 그냥 버려야할지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나서 새 노트북이 제자리를 찾고, 전보다 공간이 깔끔해지자 속이 다 후련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새 노트북이 편리한 장소에서 금방 눈에 띈 덕이다. 은연중에 저것들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누적되어갔지만 막상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아서 알게 모르게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 같다. 임인년의 인목을 살벌하게 충하는 무신월 경신일의 금기운은 그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게 만드는 임계점을 돌파시켜주었다. 이 공간과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건 온전히 나의 카르마가 만들어낸 것이니, 제 기능을 잃은 쓸모없는 물건을 치운 건 말그대로 '업장'을 털어낸 것과 같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가벼워졌고, 잠깐 막혀있던 집필에 중요한 영감을 받았으며, 호흡 수련도 단기간 내 눈에 띌 만큼 진전되었다.
정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달까. 더운 여름 날 쓰레기를 방치하면 어느새 날파리가 창궐하듯, 마땅히 치워야 할 무지와 아집의 업장을 귀찮아서, 게을러서, 인정하기 싫어서 방치하다 보면 번뇌와 망상이 쉴 새 없이 꼬여든다. 날파리를 안 보이게 하려면 본질적으로 눈에 거슬리는 날파리를 잡는 것보다 날파리를 꼬이게 만든 쓰레기를 치우는 게 우선이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알게 모르게 괴롭히는 번뇌와 망상을 없애려면, 작심하고 양심을 성찰해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고 업장을 털어내야 한다. 거주지든 마음이든 나의 공간을 제때 잘 치우고 쾌적하게 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