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걸렸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1년여간의 항암치료도 살을 까맣게 태운 방사선 치료도 끝이 났다. 문제는 항암치료 중에도 계속해서 일하고, 아니 항암치료한다고 일을 소홀히 한다는 소리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아 더 오버해서 일하고, 매 달 있었던 미국 출장과 하루 20시간씩 몇 개월을 일하는데 바친 미친 시간들이 지났다. 그 덕분에 오히려 항암치료를 마치 프로젝트 진행하듯 뚝딱뚝딱 타이트한 스케줄에 맞춰 해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저하게 떨어진 체력은 회복될 줄을 몰랐다. 미국 직장에서는 수박 겉핡기식의 인사만 건네고 각자 방에 들어가 일만 하면 됐는데, 한국 대기업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줄 서서 식당에 가서 함께 우르르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또 커피를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식을 하고... 그런 문화들이 신선했고 따뜻하다고 느꼈으나 1년 반 만에 사람들에게서 깊은 상처들을 입으며 다시 입 꾹 닫고 문 닫고 일하는 게 편한 내가 되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거두절미하기엔 너무 서두가 길었지만, 암튼 원기회복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줌바 수업에 등록했다. 60분은 물론, 120분도 거뜬하게 뛰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팔 따로 다리 따로, 그것도 동시에 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어이가 없을 때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매우 짧았고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나는 한눈에 그녀가 암환자인 줄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삼중음성 유방암 3기. 정보도 많이 없다면서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들을 했고,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몇 가지 그녀에게 알려준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진단 즉시 케모포트를 심어라.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피부가 아이 피부처럼 약해지고 핏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체력이 고갈되니 운동량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다 보면 매주, 또는 3주에 한 번씩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에 걸쳐 항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핏줄 찾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진단 즉시 케모포트를 심으면 처음에는 아파도 금방 아물고 그 후 주사실이 덜 두려워질 것이다. 물론 케모포트도 나처럼 잘 몸 안에서 움직이거나 막혀서 주사약이 안 들어가면 애를 먹지만 대다수 환자들에게는 항암치료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한다.
2. 하루 20가지의 야채를 색깔별로 섭취하라.
실천하기 어렵다면, 처음에는 5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항암제로 인해 환자들의 간은 이미 너무 혹사되고 있으므로 절대 주스 형태로 섭취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여러 야채를 한꺼번에 섭취하기 위해 색깔별 파프리카, 오이, 적색 양파, 토마토, 아보카도, 살짝 데친 브로콜리등을 잘게 썰어 써머 샐러드 형태로 만들고, 레몬즙과 저온압착아마씨유(또는 올리브유), 소금(물론 죽염 또는 히말라야 소금)과 후추등을 기호에 맞게 넣어 섭취하기 훨씬 수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밀 파스타등을 삶아서 함께 먹으면 배고픔도 덜하다. 이게 질리면, 월남쌈식으로 온갖 야채를 길쭉하게 썰어, 김에 싸서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으면 캘리포니아롤 맛이 난다. 당연히 유기농이면 좋겠지만, 이건 개인의 상황에 따라 선택의 문제이므로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3. 건강한 간식을 상시 준비한다.
가족이 있어서 항암치료 중에 내 식사를 균형에 맞게 챙겨 주면 좋겠지만, 나처럼 혼자 사는 경우 항암 횟수가 늘어나면서 끼니를 차리기는커녕 퇴근하고 소파에서 누워 있다가 침대로 옮기는 것도 힘이 든다. 그러다 보면,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에서는 휴대폰 버튼 몇 번으로 세상 편하게 오만가지를 시켜 먹을 수 있으나 시켜 먹는 음식 대부분은 건강보다는 맛이 우선이니 몸에 썩 좋을 리 없다. 따라서, 냉장고에 항상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간식을 쟁여 두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양배추를 잘게 썰어서 간식으로 씹어 먹거나, 삶은 달걀, 찐 호박과 고구마 정도를 준비해 두었다.
4. 유제품은 피하고 소이 요구르트와 난각번호 1번 달걀을 섭취한다.
이 부분은 양방과 한방의 견해 차이가 있다. 양방에서는 매일 우유 200ml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한 방에서는 절대 피하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소이 요구르트를 시켜 먹었었는데 가격이 너무 사악해서 중간에 만들어 먹으려서 기계까지 구입했지만 기계로 요구르트를 만들기에는 다른 할 거리가 천지삐까리여서, 몇 번 사용 후 그냥 그만두게 되었다. 두유도 설탕이 들어간 게 대부분이어서 무설탕인 제품을 골라서 먹었지만 너무 맛없어서 안 먹게 될 수 있으니 이것도 개인의 선택이겠다. 달걀에는 난각번호가 찍혀있는데, 동물복지라고 쓰인 달걀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목하는 환경이 아닌 규정의 최소한만 맞추는 경우가 많으므로 난각 1번을 추천한다. 찾기가 쉽지 않지만 자연드림같이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찾을 수 있다.
5. 비타민 D와 국산 청국장환으로 장건강은 꼭 지킨다.
수술날이 다가오면 병원에도 각종 비타민을 끊으라고 한다. 그 이유는 비타민이 몸에 영양을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암세표의 기운도 북돋을 수 있기 때문이 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섭취한 것은 비타민 D와 국산콩으로 만든 청국장환이다. 외국에서는 GMO(유전자 변형) 콩을 많이 사용하므로, 국산 청국장환을 추천한다. 청국장으로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항암 때문에는 냄새 탓에 쉽지 않을 수 있다. 만일 청국장으로 끓인다면 청국장은 맨 마지막에 불을 끄고 풀면 균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 더 건강에 좋다고 한다.
6. 몸의 체온을 올린다.
이번 여름같이 더울 때에는 힘들겠지만 체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암세포가 살아남을 확률은 줄어든다고 한다. 집에 욕조가 없는 나는 건식용으로 된 실내 사우나를 사용해 가능한 날마다 30분씩 앉아 있었다. 같은 원리로 병원에서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 꾸준한 운동을 하라고 권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공원에서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며 하는 산책이 가장 좋다. 항암 치료를 하면 혈관이 좁아지기 때문에 고농축 산소가 좋다고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가능하다면 등산이나 나무가 많은 곳에 가서 산림욕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7. 탄산음료 대신 레몬물을 마셔라.
항암제에 따라 부작용이 다르지만 대부분 구토와 메슥거림을 동반하다. 그럴 때마다 딱 사이다 한 모금만 마시면 살 것 같은데, 설탕은 암의 먹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레몬을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로 껍질을 소독한 후 썰어서 물에 타서 레몬물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 겨울인 경우에는 사이다 대신 동치미가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물에 쉽게 타 먹을 수 있는 레몬즙들이 나오지만, 결국 그 안에도 식품보존을 위해 방부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을 테니 신선한 레몬으로 물을 만들어 마시는 것을 권한다. 꼭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레몬물은 비만이나 만성염증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단, 너무 레몬의 산 성분으로 인해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치아에 에나멜을 손상시키거나 위를 자극할 수 있으니 유의가 필요하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 중에는 무조건 잘 먹어라.
병원에서도, 한방에서도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 천지다. 생선조차도 연어와 참치는 안되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피하고, 튀긴 음식, 탄산음료 피하고, 피하고, 피하고 , 피하고... 그러다 보면 먹을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다. 사실 항암 중에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면 항암치료 자체를 못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다음 혈액검사 때까지 암세포가 자라나는 것을 무방비 상태로 보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못 먹어 체중이 계속 줄고 있다면, 입에 당기는 것으로 무조건 잘 먹어서 체력 보강을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이 시간도 다 지나간다. 그러니 암에 걸렸다고 내 지난 삶을 슬퍼하거나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왜? 바뀌는 것은 하나 없고 내 안에 울화만 키운다. 그러니,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하루씩 버텨내면 된다. 이것도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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