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빛을 따라 살기 (1)

딸은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다

by 이나

나의 할아버지는 장남이고, 나의 아버지 또한 장남이며,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는 두 딸이 있고, 그중 장녀가 나다. 딸 둘만 있는 장남. 대충 느낌이 올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들을 선호했고(학창 시절 돌이켜보면, 한 반에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1.2배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다 보수적인 가풍이 한 몫하여 나의 어머니는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아들을 낳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과가 따라주지 않자 할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다.


때문에 우리 집은 평소에는 평화롭다가도 시댁 이야기만 나오면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셨다. 이와 관련된 나의 유년시절 기억 중 하나는(나의 자아가 생긴 이후 거의 최초의 기억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의 시집살이 때문에 말다툼을 하고, 어머니는 장롱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계셨는데, 어린 내가 어머니 옆으로 기어가 "엄마 울지 마"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 머리와 무릎을 두드리며 위로했던 일이다.


거기다가 친척들은 싹싹하지 않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자식들의 처지보다 우리 집의 사정이 그나마 나아 보여서 인지 모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아버지를 질투(?)했었는데, 그들은 당연히 자식인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몇몇 에피소드가 있지만, 지금도 돌이켜보면 그 서러움이 뭉클 올라오고는 한다.


어찌 되었건 어린 나의 눈에는 부모님이 많이 지쳐 보이셨고, 행복해 보이지 않으셨다. 어린 나는 부모님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어린 내가 부모님을 행복해지게 만들기 위해 고심한 방법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딸이 아들로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고는, 위 목표에서 조금 수정하여 아들보다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자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은 자라면서 이후에 힘든 시험 등을 준비함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목표를 달성해도 결국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점에서 이미 원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었기에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나 자신을 더욱더 엄격하게 몰고 갔다. 그 결과 주변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을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때문에 만성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덧. 유일하게 할아버지는 손녀인 날 정말 이뻐하셨다. 성격이 매우 엄하셨다는데, 나의 기억에는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덧 2. 할아버지 장례식 때 손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물론 당연한 일이다), 다른 친척의 잘난 장손은 2시간 밖에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일이 바쁘다고 다시 올라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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