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years to come ..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걷히는 2005년 9월 4일 저녁 뉴욕 JF Kennedy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노트북이 든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중간 사이즈 캐리어는 왼손에, 3층짜리 두툼한 이민가방은 오른발로 툭툭 밀며 오른손으로 간신히 운전해 공항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었다.
이민가방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공항 카트기를 찾았다. 인천 공항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는 카트기가 여기선 돈을 내야 했다. 신장 2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소위 Big&Tall 사이즈에 엉덩이가 허리에 붙은 듯한 흑인 아저씨가 카트기 앞에 기대서서 다가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I would like to borrow one cart. 꿀꺽 ~ 용기 내서 말했다. 문법에 맞는 문장이었지?
흑인 아저씨: It's two dollars! 깜짝이야. 다이하드 영화에 나오는 사무엘 잭슨 아저씨 목소리다.
유학 준비 과정 중 읽은 어느 블로그에서 뉴욕에서는 소매치기를 당하기 쉬우니 달러를 환전할 때 큰 지폐 단위로 부피를 적게 해서 가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50불과 100불짜리 지폐만 가져왔는데.... 빠닥빠닥한 새 돈 50불 한 장을 흑인 아저씨에게 건네주니, 지폐를 허공에 올려다 놓고 보고, 가지고 있던 손전등으로 비춰보기도 하고, 검은 매직으로 한 줄 그어도 보고 난 뒤에서야 거스름돈 48불을 내어 주었다. 갑자기 생긴 48불 거스름돈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방 세 개를 카트기에 올렸다. 휴.... 이젠 살 것 같네. 그럼 한번 가 볼까?
택시 정류장을 찾아가는 도중, 일본 나리타 공항 경유 과정에서 만난 한국 모 여자대학 대학교수 가족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기상악화로 일본에서 경유하는 과정이 5시간 넘게 지체되었었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사 온 국제 전화카드로 뉴욕에 도착하면 다니게 될 대학 부설 어학원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들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그 대학교수님에게도 내 전화카드를 빌려주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이메일을 적어주며 미국에 도착하면 영어공부 관련 자료를 보내주겠으니 연락하라고 했었다. 알겠다는 대답과 동시에 이메일이 적힌 종이를 가방 어딘가에 넣어 두었다.
기상이 호전되어, 탑승을 시작한다는 일본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방송이 흘려 나왔고 그렇게 14시간을 달려 뉴욕에 도착했다. 게이트를 나와보니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 고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뉴욕 공항에 도착하면 어학원 담당자가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에 다니게 될 학교에 전화해 비행기가 연착되니
Flight is getting delayed.Don't go without me!!!!
비행기가 연착된데요.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라고 어설픈 영어로 메시지를 남겼는데......
어이없는 착각을 한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중얼거리며 재빨리 공항 출구를 빠져나왔다.
'아 드디어 왔구나.'
뉴욕공항 주변의 두껍고 텁텁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정말 달콤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막 지났고 내 앞으로 사진에서만 봤던 뉴욕 옐로캡 (Yellow Cab)이 줄줄이 서 있었다.
'다 버리고 왔는데 잘한 걸까?'
의구심이 몰려왔다.
동시에 '이젠 여기가 내 집이야'라는 목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승진하기 위해 미국 땅을 몇 년 밟고 가야하는 것도 아니었고, 남들처럼 부모님에게 떠밀려 유학을 온 것도 아닐뿐더러, 잠깐 해외여행을 할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평범한 나였지만 뉴욕에 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앞뒤 상황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준비해서 온 것이었다.
부모님꼐는 글로벌 시대인만큼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설득시킨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명목상 어학연수를 준비했지만 뒤로는 대학, 취업 등 장기 거주를 계획했었다.
내 손으로 번 월급으로 방세를 내고 여행도 다니며 자기계발을 계획하는 현재 일상에 만족하며 감사한다.
공무원이 최고라는 사회의 으름장에 나는 이미 낙오자인가 두려워할 필요도, 태어날 때부터 까무잡잡한 내 얼굴을 미친 듯이 미백할 필요도, 단추 구멍보다 작고 그래서 더 매서워 보이는 눈을 성형하라는 삼촌들의 말에 우울해질 필요가 없어졌다.
외국인으로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비자 관련 법과 수수료 때문에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날 때도 있지만 편한 내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으니,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가진다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흥미진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