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나만의 무기

독특한 웃음소리 만들기

by Jaden

어떤 사회든 지향하는 인재상이 있고 그 자질들을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개인주의라는 의미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것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건지 뉴욕 생활 첫 3년은 나를 새롭게 포맷(format)하는 기간이었다.


직장이란 내게 월급을 주며 내가 가진 기술과 아이디어를 이용해 이익을 내는 조직이다. 이 개념 또한 빨리 받아들이고 직장에서 원하는 인재상의 자질을 찾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주저할수록 또 저항할수록 나만 더 힘들어진다. 직장 1-2년차는 수습기간으로 사원은 업무를 배우는 기간, 인사부와 직속 상사는 사원의 장점/단점뿐 아니라 내 성향을 파악하는 기간이다.


뉴욕 금융회사 인턴 3개월 후 정직원이 된 6개월 후 두 번에 걸친 직무능력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너무 조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You are too silent.


회사 측 평가에 당황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성적표에 늘 '자기주장이 강하며...."라는 의견을 남기셨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그런 별종 인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딱히 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의견을 밝히는 내 성향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리라는 자괴감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두 번이나 같은 지적이 나왔으니 왈가왈부하지 않고 고치려는 모습을 신속하게 보여줘야 했다. 업무 역량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현 회사는 '괴짜'라고 불릴지언 정 개성이 강한 인재를 좋아했다. 간단히 말해, 홍길동이라는 사원이 있다고 했을 때 직장 동료들이 홍길동을 생각하며 내뱉는 첫 한마디가 중요하다. 여러 부서의 매니저들도 별나도록 뚜렷한 특색을 지난 사람들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시작단계로 일단 주위를 살폈다. 어떤 주제에도 박학다식한 9년 차 애널리스트, 마당발 10년 차 매니저, 애기처럼 쟁쟁거리며 말을 하는 인사부 직원, 말은 느릿느릿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7년 차 프로그래머, 자기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디저트만 먹는다며 회식에서 나오는 디저트는 사장님이 건네줘도 거절하는 4년 차 애널리스트 등등 이들에 비해 나는 밋밋해 보였다 -- 박학다식한 9년 차 동료는 모든 주제에 아는 척하며 자기가 맞다고 우겼고, 마당발 10년 차 매니저는 자기와 상관없는 내 업무에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건데 라며 훈수 두기 일쑤였다. 인사부 직원은 나는 "사장님을 위해서 일한다" 라며 사장님이 시키는 일만 할 뿐 사원 사이 대화 부족으로 발생하는 업무 차질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절하고 7년 차 프로그래머 동료는 프로그램 관련 질문을 하면 한 번에 답이 오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도 회사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내가 가졌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뭘까?

밋밋한 나를 가시적인 존재로 보이게 해 주는 게 뭘까?


그러다 생각난 것이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회사 점심 회식이었다. 매니저들과 사장님이 참석하는 자리라 다소 형식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데 이 자리에서 누군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나는 크게 웃었다. 모두들 놀란 듯 나를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재밌는 애기에 재밌다며 박장대소했다. 가끔 웃는 내 모습에 웃겨 더 웃게 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웃음소리는 크고 성악의 테너 톤을 생각나게 한다. 일단 이것으로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그러기를 몇 개월, 나에게 별명이 생겼다.


시트콤 프렌즈에 나오는 제니스의 독특한 웃음소리


허허하고 웃는 애널리스트 - '이 직원은 털털하고 같이 작업하기 어렵지 않으며 팀 프로젝트에 적극적이다.'라고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어떤 주제를 놓고 내가 맞다고 우기며 논쟁할 수 있는 지식이나 대화능력도 마당발처럼 이리저리 훈수 둘 배짱도 없지만 대화에 반응해주는 것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개월 후 연말 직무평가에서 사내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재라며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힘을 얻어 더욱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인생 첫 마라톤 참가를 계획하면서 회사에 알리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만난 동료에게도, 인사부 직원과 커피 타임에도, 매니저와 잠깐 업무 체크하면서도 " 나 다음 달 시카고에 마라톤 하러 가"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런 내 행동이 처음에는 경박스럽고 자기 자랑을 일삼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몇 개월 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회사에서도 다루기 힘들어하는 20년 차 중견 인물이 자기가 운영하는 어린이 축구 교실에 한 학부모가 준 거라며 마라톤 잘 뛰라며 운동복 할인 쿠폰을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회사 사장은 내가 마라톤을 뛰는 10월 15일 주체 웹사이트에 들어가 내 경기 기록을 확인해 보는 등 나에게 업무 외에 개인적인 관심까지 보여 주었다.


내가 즐기는 그 어떤 것도 나의 특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뜨개질이건, 사이클이던, 사진 찍기던, 외화 동전 모으기, 엽서 모의기 등 남들이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동전 모의기? 하며 비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겐 이렇게 말하면 있다.


I like collecting coins. Do you have a problem with that? (나는 동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 있습니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내 개성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내 취미 & 내 선택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강력히 맞서서라도 '나는 주체성' 있는 인격체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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