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형성의 기본기
전편에 이어
뉴욕 회사에서 존재감에 관한 마지막 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초호감형’ 인재들이다.
뉴욕에서 말하는 ‘호감’이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요소가 압축되어 있다.
당당한 체격에서 나오는 풍채,
스포츠 경기 결과를 농담처럼 던지는 여유,
백인 주류 사회의 매너를 체득한 유복한 부드러움.
이들은 존재 자체로 이미 가시성 (visibility)을 확보한 채 게임을 시작한다.
내 사회생활의 첫 무대는 뉴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게 내 인생의 모토였다.
하지만 초호감형 인재들과 일하면서
이 무대에서 나는 외국인?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실은 냉정하다.
특히 초기에는, 회사 미팅 자리에서 한마디를 보태기 위해
괜히 힘을 주고 있는 나 자신을 자주 발견하곤 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호감형 인재보다 가시성 점수에서 밀릴 수 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나도 그들과 같은 존재감을 만들려고 애썼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 노력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낯가림 없이 먼저 "Hi"라고 인사하는 것이 내 성격이기도 했고, 덕분에 동료들과 가까워졌고, 조직의 언어를 일찍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 나의 ‘참여도’는 분명 가시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시간이 지나며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화려해 보이는 ‘초호감형’의 기운도 뉴욕이라는 비즈니스 전쟁터에서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흔들리고 리더가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리더는 어제 미식축구 이야기를 나눈 ‘호감형 동료’를 찾지 않는다. 대신 지금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사교적인 웃음보다 필요한 건 리더의 불안을 잠재워 줄 단단한 업무 지식과 보고력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지독하게 기본적이고 지루한 이야기로 돌아온다.
리더가 묻기 전에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가 터지기 전에 잠재적 리스크를 짚는 것.
회사 내,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그 역할이 조직 안에서 얼마나 명확하게 공유되고 있는지.
이 두 가지가 분명하면
나는 이미 회사 안에서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결국 뉴욕에서 장기전에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초호감형 인간들이
화려한 언변으로 박수를 받을 때,
정확한 업무 지식과 보고력을 무기로
리더의 불안을 잠재워라.
그게 어쩌면 불평등하게 보이는 무대에서
내 자리를 지켜낼 가장 현실적인 전략일지 모른다.
뉴욕에서 10여 년 넘게 일해 오면서
느낀 것은
호감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신뢰는 리더의 마음을 움직인다.
뉴욕 퇴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