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살렸지만, 내 성과로 번역되지 않은 Invisible Work
보너스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팀은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내 이름은 없었다.
놀랍다기보다는
그제야 하나의 구조가 또렷해졌다.
전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각국 중앙은행을 연결하는 결제 시스템 상품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 안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겼다. 새로운 인턴이나 직원이 들어오면 매니저들은 그들을 내게 연결했다.
"이것 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이 시스템은 Jaden 이 제일 잘 알아요."
나는 신입 온보딩의 go-to person이 되었다.
처음엔 기뻤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좋았고, 또 한국 경영자들의 책에서 본 데로 "밑바닥부터 성실하게 배우라"는 미덕을 실천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트레이닝 과정에서 인사부나 기술부 등 다른 팀들과도 교류를 해야 하는데, 회사 시스템을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 역할을 맡았다.
그 선택이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역할이 회사 내에서 공식화되지 않은 채,
고정되었을 때였다.
1년이 되어가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새 사람이 들어오면 여전히 내가 불렸다. 온보딩은 내 본업 위에 얹힌 추가 업무가 되었고, 팀은 그 상태에 익숙해졌다.
근데 그해 연말 보너스 시즌,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셀프 평가서에 “10명 이상의 인턴 및 정직원 온보딩을 담당”했다고 명확히 기록했지만, 회사는 그 기여를 성과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 일은 중요하지 않아서 빠진 게 아니라, 회사 안에서 평가 언어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일....
승진과 평가표에는 남지 않지만, 조직이 굴러가게 만드는 일이다.
신입 온보딩
문서 정리
팀 내 감정 노동
갈등을 완화하는 중재 등
책임감이 강한 사람
설명을 잘하는 사람
갈등을 만들지 않는 사람
역할의 경계를 먼저 묻지 않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지만, 회사는 이들의 기여를 '성과'가 아닌 그 사람의 '성향 (Nice personality or Good team player)'으로 처리해 버린다.
이 글은 인비저블 워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상 회사에서 시키면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 보이지 않는 일을
어떻게 회사에서 가치를 두는 업무로 관리할 것이냐 이다.
인비저블 워크가 평가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일이 보고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성향'으로 분류되어, 호의가 되고, 그 호의는 업무적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도와주고 있다”는 말은
호의가 된다.
호의는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온보딩 프로세스를 매니징하고 있다”
“트레이닝 세션을 운영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순간,
이 일은 업무가 된다.
회사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 괜찮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대신
"온보딩 세션은 보통 1주일 소요되는데, 이 것을 하려면, 이번 주 제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것 같아요. 매니저님께 리소스 배분 논의를 요청드려도 될까요?"
라고 말해 개인 문제가 아니라 팀 운영 이슈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말투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업무의 존재는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된다.
Invisible Work는 회사 운영에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를 선의, 호의 또는 헌신의 문제로만 다루면
개인의 커리어 측면에서 설명하기 곤란해진다.
보너스 명단에서 내 이름이 빠졌을 때,
나는 그동안 정리해 두었던
온보딩 자료와 트레이닝 기록을 정리해
매니저와 인사부에 제출했다.
지난 1년간
누구도 공식적으로 맡지 않았던 역할을 통해
10명의 직원이 안정적으로 회사에 안착했고,
현재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구조적으로 설명했다.
그 결과,
보너스 명단은 수정되었다.
그때 분명해졌다.
이름이 없는 일도,
내가 이름을 붙이면 업무가 된다는 것.
회사가 정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일은 아니다.
그 가치를 언어로 만들고
구조로 설명하는 것 또한
회사에서 내게 닥친 일에 대응하는
전문가의 역량이다.
이 구조를 이해한 이후,
나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는다.
뉴욕 퇴근길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을 올려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