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에 오른 사람은 여전히 학생이었다

한 거장의 겸손한 열정

by Jaden

뉴욕에서 많은 전문가를 만났다.
그래서 나름 사람을 보는 기준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그 기준이 완전히 깨졌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서 오신 한 교수님을 만나며 내가 가진 견고한 고정관념 하나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분은 전후 폐허가 된 한국을 설계하며 평생을 연구에 바치신 분이다. 학계의 정점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위치임에도 그분은 배움 앞에서 학생의 자세로 앉으신다.



거리가 멀었던 약 850개의 단어

교수님은 미국 박사 과정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약 850개 단어만 알면 미국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 돌던 시절, 그 말을 믿고 떠났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귀국 후에도 영어는 늘 넘어야 할 산이었다.


지금도 아시아권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시지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미국 교수진과 마주할 때라고 하셨다. "단어는 들리는데, 행간에 숨은 의도와 뉘앙스까지 이해했는지 확신이 없어서 불안합니다."


학계의 거목이 내뱉은 이 정직한 불안함이 그분을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앉혔다.



기록하고, 녹음하고, 복습하는 열정

우리는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미국 기업과 학계의 프레젠테이션, 비즈니스 에티켓, 관용적 표현, 문화적 맥락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을 구글 문서로 공유해 줄 수 있나요?"


바로 복습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식 억양을 고치고 싶다며 본인의 발음을 체크받는 순간을 녹음해도 되겠냐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셨다. 매번 만날 때마다 본인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피드백을 받으면 그다음 주에 반드시 완벽하게 익혀 오신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교수님을 뵐 때면 일취월장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배려의 언어

한국 대학 교수님들에 대해 내가 가졌던 이미지는 한 단어였다. '권위'


하지만 그분은 스케줄이 변경될 때마다 이유를 설명하며 미안함을 전했고, 만남이 끝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배움을 즐기는 사람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나는 리더십의 또 다른 형태를 보았다.


어느덧 나 또한 교수님의 연구가 정확한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그분의 커뮤니케이션을 끌어올리는 일을 나도 모르게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 내가 돕는 건지, 아니면 배우고 있는 건지 모를 만남이 이어졌다.




결국 해내는 사람

열심히 하면 변할 수 있다는 것. 꾸준함은 결국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 그 자명한 명제를 교수님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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