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언어를 사는 사람
한국 굴지의 반도체 회사를 다니던 그는, 40대 초반에 정리해고를 맞았다. 재취업을 준비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중국 반도체 회사에 입사했다.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중국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훗날 한국 기업 재취업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건,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 회사에 다닐 때도 중국 출장이 잦았던 터라 상급 중국어는 이미 구사하고 있었다. 언어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공장은 달랐다. 업무 프로세스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특정 프로젝트를 추진하다가도 정부 지시 한 마디에 중도에 올스톱되는 일이 반복됐다. 중국이 가진 자본력으로 제품 생산 투자 계획은 있지만 예정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 와중에 올해부터는 주말 출근 지령까지 내려오면서, 회사 근처로 거주지를 옮겼다고 했다.
처음 짧은 소개를 나눈 뒤 한동안 별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비즈니스 영어 향상을 위한 버디로 만나게 됐다. 업무 이메일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영어 이메일 템플릿을 만들고, 예상 가능한 비즈니스 영어 표현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로부터 중국 소식도 듣고, 나는 뉴욕 소식을 전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서로의 생각도 나눴다. 현지에서 직접 듣는 중국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신기하고 생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목표도 조금씩 높아졌다. 스피킹을 원어민 수준으로 끌어올려 보고 싶다고 했다. 지인 소개로 다른 반도체 회사 인터뷰 기회가 있었는데, 영어 실력 때문에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고 했다. 올해는 영어회화를 반드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한국어, 중국어, 그리고 이제 영어까지.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며, 한국에 있는 가족을 책임지면서,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힘든 일을 설명할 때도 유머를 섞어 가볍게 풀어내는 그분과 만나는 날은, 나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전염이 되는 것 같다. 그분을 만나고 나면, 골치 아팠던 일들도 어쩐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