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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러댄 Aug 28. 2019

취향을 돈 주고 사는 법

달마다 치르는 월례행사


이를테면 잘 먹고 잘 사는 법 그 비슷한 것. 나는 취향이 확고하고 또 명확하다.

나름 고집이 있어 하고자 하는 건 무조건 하고 봐야 하는 성질의 소유자랄까. 직딩 6년 차, 이젠 월급이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기보다 월급 들어오면 뭐 하지? 생각하기에 바쁜. 나름 소비에 있어선 일가견이 생긴 직딩으로 진화한 것이다.


앞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그리 풍족하지 않은 가정에 둘째 딸로 태어나 늘 좋은 건 첫째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갔고, 나는 어쩐지 빠르게 자라 버린 눈치 덕에 뭘 사달라 해달라 징징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뭘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루면 없어졌다. 그냥 해 주는 것에 적당히 만족하며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이른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이 내 통장에 찍혔을 때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드디어 내가 번 돈으로 내 마음에 따라 소비를 할 수 있다니! 비록 최저임금에 걸맞은 진짜 자그마하고 귀여운 월급이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취업을 빨리 했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난 돈을 모아두는 성격은 못 되는 듯하다.

처음엔 적금도 들어보고, 어렵게 번 돈 쉽게 쓰기 너무 아깝다며 통장에 꼭꼭 쟁여뒀었는데 개처럼 일하고 개미처럼 쓰니 인생사 재미가 없었다. 난 대체 뭘 위해 일하나 회의감도 매주 찾아들었고, 이렇게 살다가는 일의 노예로 깔려 죽고 말 거야 하며 취향에 돈을 쓰기로 맘먹었다.



취향(趣向)[명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일컫는 말.
영화 '캐롤' (Carol,2015) 中


다행히 난 내 취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단조롭고, 가짓수가 적었다. 문화생활, 여행, 그리고 옷. 때로는 먹는 것?


하나씩 했다. 처음엔 입고 싶었던 옷 사기.

가격에 얽매이지 않고 진짜 내가 마음에 쏙 드는 옷이 생기면 주저 않고 샀다. 이거 하나 살 값이면 저거 두 개 사는데, 막상 그렇게 구입한 옷들은 한두 번 입고 옷장 속 겨울잠 신세가 되었다.

좀 비싸더라도 퀄리티 좋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니 이렇게도 코디하고 저렇게도 코디하며 열심히 입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한 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으니 멋도 살고 기분도 산다는 것. 어쩔 땐 출근길이 즐겁기도 했다.


그리고 적금 통장 대신 내가 쓰고 싶을 때 취향에 소비할 수 있도록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매달 그 통장에 일정 수준의 돈을 넣어두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 훌쩍, 콘서트 보고 싶을 때 훌쩍. 그렇게 쓰는 용도로.

즉흥으로 가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통장이 배불렀다 싶으면 아! 나 이 정도 모을 동안 열심히 일했네? 그럼 한 번 떠나볼까? 하고서 항공권 티켓 사이트를 여는 것이다. 그렇게 추억을 쌓아두면 다음 월급날까지 그 기억을 곱씹으며 보낼 수 있다. 가끔 큼지막하게 지르고 나면 알 수 없는 쾌감과 보상의 느낌이 적절하게 온다.




생각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열심히 번 돈, 취향껏 열심히 쓴다. 마치 매달 찾아오는 월례행사처럼 한 달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 있고 없고의 차이가 매우 컸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써대는 덕에 가끔은 카드값에 허덕이고 며칠은 편의점을 전전긍긍해야 하지만(웃음). 나는 달마다 취향을 돈 주고 산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련다. 후회는 미래의 내 몫이다. 마! 인생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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