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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사기 Sep 12. 2023

연애 이야기 #2

어느 비 내리는 날에,

창가에 빗물이 송송 맺혔던 어느 오후에

야마모토 상과 나는

또 연애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교토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토 사람들은 말을 할 때 꼭 상대를 생각해서라며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둘러서 얘기하니 들을 때

그 속뜻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요.


"그냥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면 좋은데 말이에요~

같은 일본 사람이라도 도쿄 사람인 나는

교토 사람들의 속내를 잘 모르겠어요"

야마모토 상이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사귀던 남자가 헤어질 때 [널 사랑하니까] 라거나

[널 위해서 헤어진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요~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솔직히 말해주는 게

이쪽을 훨씬 위한 일인데..

그렇게 둘러대는 핑계는 너무 싫어요"

야마모토 상이 한 톤 높여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요~

남자가 헤어질 때 하는 말 중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하니까는

정말 최악인 거 같아요!"

나도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최악이 있어요"

야마모토 상이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그 게 뭐예요?"

내가 바로 다시 물었습니다.

"사라지는 거요.. 갑자기 사라지는 거!"

야마모토 상이 내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네? 사라지는 거요? 어떻게요?

그런 경험 있어요?"

사라진다는 상황이 상상이 안된다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습니다.

"네.. 있어요"

야마모토 상이 짧게 대답했습니다.

"네? 진짜요?? 어떻게요???"

나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어릴 때 사귀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 15년쯤만에

재회해서 반년 정도 다시 사귀었지요.

어느 날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나는 그날 역까지 남자 친구를 바려다 주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갑자기 사라졌죠.

연락도 안 되고, 그냥 말 그대로 사라진 거요"

그때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는지는

야마모토 상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 그날 저녁으로 스튜를 먹었었어요.

그전 날 종일 끓여서 만든 비프스튜였지요.

내가 정성을 다해 끓인 스튜를 먹고 사라진 거예요.

내일 또 만날 것처럼 인사를 했는데

그다음부터 연락이... "

그녀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되뇌었지만,

나의 웃음보는 그 순간 한 방에 터져버렸습니다.

"말도 안 돼요~

진짜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니...

왜 그랬을까요?"

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다시 물었습니다.

"모르죠.. 왜 그랬는지는..

암튼,

남자랑 헤어질 때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게

최악임에는 분명해요"

야마모토 상은 힘이 들어간 강한 어조로

내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 게 최악 맞네요"

나도 그것이 최악의 최악임에 동의했습니다.


"그것도 그런데 예전에 야마모토 상이 말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 있으니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다던..

그런 말을 하는 남자도 좀 아닌 것 같아요."

이 건 예전에 야마모토 상이

자기 세계가 너무 분명한 남자는 좀 아니라며,

예전에 함께 동거했던 남자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남자가

혼자 생각할 것이 있다고

집에서 좀 나가있어 달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그때 야마모토 상은 한국으로 하면 PC방 같은 데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라 내가 말했습니다.

"음... "

"그 남자가 그 남자예요.

갑자기 사라진 남자랑 동일 인물이요!"

야마모토 상이 반쯤 웃음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네?? 같은 사람이에요??"

난 숨이 넘어갈 듯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우리는 함께 한동안 기절할 듯 웃었습니다.

"사람은 안 변하나 봐요. 사랑은 변해도..

뭔가 그런 분위기의 남자였어요"

야마모토 상이 말했습니다.

"그럼, 처음에 사귀었을 때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나는 갑자기 그 남자와 야마모토 상이 처음에는

어떻게 헤어졌는지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 그때도 비슷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전화로 이 집에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하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남자의 집에 내가 들어가 함께 살고 있는 거였거든요."

야마모토 상이 옛날 일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네??

그래서 그럼, 그 집에 그 이후로 혼자 있었어요?

그대로 헤어진 거예요??"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재밌기도 한 나는

약간 신난 어조로 다시 물었습니다.

"금방 나가려고 했는데,

또 혼자 있어보니 은근 편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집에 혼자서 3개월 있었어요.

결국에는 본가로 돌아갔지만,

그 사이 그 남자와 마주친 적은 없었어요.

그 남자와는 그 게 마지막이었지요..

근데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안 물어봤어요"

야마모토 상은 조금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랬군요..

그래도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보다는

누군가와 이런 추억이 있는 게 훨씬 나은 거 같아요.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거리가 있으니까요"

위로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로 마무리하면서도

왜 이리 웃음이 나던지..

나와 야마모토 상의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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