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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bechu 얀베츄 Sep 10. 2023

한국인인 것 자체가 장점인 직업은 없나?

왜 뜬금없이 미국에서 교사가 되었나 - (4)

아이가 어릴 때는 참 정신이 없지요. 친정도 시댁도 없는 이곳에서 남편과 둘이만 아기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 해도 젖병을 거부하는 아기를 완전히 모유로만 키우다 보니 아기와 만 2년은 한 몸처럼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아기는 제가 없으면 아빠랑 있어도 세상 떠나가라 울었고, 그런 모습 보기가 힘들었던 저는 그냥 나 죽었소 하고 육아를 했어요. 그렇게 아이가 조금씩 자라 만 두 살이 넘고는 일주일에 이틀, 세 시간씩 프리스쿨 맛보기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래서 잠시잠깐 시간이 나서 다시 커뮤니티 칼리지 수업을 두세 개씩 들었습니다. 시작한 거니까 끝을 내야지 싶어 하긴 하는데 목표가 막연하니 동기는 약했지요. 그때부턴 아이가 집에서도 혼자 곧잘 놀아서 무릎에 앉히고 공부를 하면 옆에 있는 종이에 낙서를 끄적거려놓기도 하고, 책상 밑에 인형집을 차려놓고 놀기도 하고, 엄마를 기다리다 제 발치에서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기도 했었어요.

시험공부 하려고 뽑아둔 자료를 보며 노는 딸

그래도 이렇게 두 과목, 6학점.. 야금야금 하긴 하는데 이래 가지고 120 학점을 어느 세월에 채우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가 만 세 살, 네 살.. 프리스쿨에 다니게 되었고 아이를 남편과 두고 외출하는 데 자신이 붙는 날이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뭘 하고 살아야 할까를 늘 고민하면서도 부딪혀 감당하기엔 모든 것에 너무 자신이 없었던 저는 저 스스로가 저의 가장 큰 적이었어요. 남편은 늘 자기가 직장에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지 아냐며, ‘너보다 영어도 못하고 너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천지 빽가리인데 왜 그러느냐’고 답답해했지만 저는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미국에 십대때 와서 대학 다니고 자리잡은 당신은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나를 이해 못 한다고, 전업주부가 내 선택이라고 대답해 버리곤 했죠. 하지만 저는 막상 살림도 육아도 잘하지도, 전혀 즐기지도 않는데 말이죠.


아이가 프리스쿨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순이던 저 마저도 사람들과 교류할 일이 많아졌어요. 사립학교에 설치된 프리스쿨이고 유독 다양한 나라에서 온 국제 가족이 많아 서로가 죽이 잘 맞아서 프리스쿨 가족들과 자주 만나 놀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사교생활이 늘어나다 보니 아무래도 저 자신을 설명할 말이 더 간절해지더군요. 그런 데다가 딸아이가 커가다 보니 내가 그냥 이렇게 있어도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한국어를 모국어로 키워 만 세 살까지도 영어를 거의 못하고 한국어만 했던 아이가 오래오래 한국인인 엄마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랐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고요.


내가 지금 나로서도 충분히 잘할만한 일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수요가 있는 미국에 설마 그 하나가 없을까. 내가 너무 용기를 그러모으지 않아도 잘할 수 있을 그런 일을 찾아보자.. 내가 한국 사람인 게 메리트가 되는 일은 없나? 영어가 부족해도 한국인라는 게 그 부족을 메꿔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찾아봐도 그런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이런 생각에 미치게 되었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라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를 좀 못해도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면 얼마나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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