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라는 거대한 서사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는 것이다

by 에치피

토요일 밤, 프리미어리그 중계가 시작된다. 경기장에 가득 찬 관중의 함성이 스피커를 통해 거실을 채우면, 나는 잠시 여기가 어디인지를 잊는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나 리버풀의 안필드에 가 있다. 프리미어리그가 단순한 축구 리그를 넘어 전 세계 수억 명의 주말을 지배하는 이유는, 그것이 90분짜리 스포츠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축구장이라는 극장

프리미어리그의 경기장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관중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참여자다. 90분 내내 노래를 부르고, 상대팀에 야유를 보내고, 자기 팀의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몸을 앞으로 내민다. 이것은 한국의 프로 스포츠 응원 문화와는 또 다른 결이다. 조직된 응원이 아니라 자발적인 감정의 폭발.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합창단이 되는 순간은, 영상으로 보아도 소름이 돋는다.


영국의 축구 도시를 직접 걸어본 사람이라면, 경기가 없는 날에도 거리 곳곳에서 축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펍마다 걸린 팀 스카프, 가게 쇼윈도에 진열된 유니폼, 골목 벽의 벽화. 프리미어리그는 경기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정체성 일부다.



매 시즌이 새로운 드라마

프리미어리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리그에서는 예측이 의미 없다는 것을. 꼴찌 팀이 1위 팀을 이기고, 강등 후보가 챔피언이 되고, 이적 시장에서의 한 건의 거래가 시즌 전체의 판도를 뒤집는다.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우승은 그 정점이었다. 5000대 1의 배당률을 뚫고 이루어낸 기적. 그것은 단순한 스포츠 결과가 아니라, 모든 약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런 불확실성이 프리미어리그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결말을 알 수 없는 이야기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은 없다. 매주 토요일, 전 세계의 팬들은 그 불확실한 이야기의 다음 장을 읽기 위해 TV 앞에 앉는다. 이것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다. 다만, 이 시리즈는 각본이 없다.



선수라는 인간에 대하여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은 종종 초인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시속 30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정확히 30미터 앞의 동료에게 패스를 꽂고,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골을 넣는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이다. 부상에 시달리고, 슬럼프에 빠지고, 가족 문제로 고민한다. SNS 시대에 선수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면서, 팬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선수의 움직임에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기의 전술에서 전략적 사유를 읽어내는 시각. 축구는 발로 하는 체스라는 오래된 비유가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본다는 것

한국 시간으로 프리미어리그는 대부분 밤늦게 시작된다. 토요일 자정 무렵, 혹은 새벽. 그 시간에 TV를 켜고 중계를 보는 행위에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하다. 내일 아침을 포기하겠다는 각오, 혹은 월요일 출근이 괴로울 것을 감수하겠다는 각오. 하지만 팬들에게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90분의 경기가 주는 감정적 보상은, 잃어버린 수면 시간보다 훨씬 크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가 일상에서도 중요하듯,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팬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질 수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키퍼가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다음 경기가 기다려지는 것이다. 패배의 쓴맛을 아는 사람만이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


프리미어리그는 축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인생을 보여준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 서사에 수억 명이 빠져드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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