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말고 박사과정 6학년
그동안 온라인 플랫폼에 무언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적는 건 지양해 왔는데, 그건 내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나는 이 생활이 길어짐과 동시에 가끔씩 불쑥 나의 지금 생활에 대해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현실이 힘든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 생활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어찌저찌 견딜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간 기본적인 것들이라 생각했었던 것들, 예를 들면 맛있는 걸 먹으러 나간다거나, 간단하게 돌아다니면서 노는것, 혹은 미용실이나 네일샵에 가는 것들, 운동에 등록해서 다니는 것 등등...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오래 지속되니 힘들다.
원래는 별 생각 없었는데, 아까 뭐 검색하다가 우연히 뉴저지에 사는 새댁 블로그를 보는데 좋아 보였다. 옷도 엄청 사고 고층 아파트로 이사 가고 한국 음식도 원 없이 먹는다. (심지어 배달도 되는 듯!!) 머리도 미용실 자주 가서 자르고 남편이랑 데이트도 많이 나가고.. 그냥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일인데 이 동네에서는 돈주고도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튼 그 사람도 그런 생활에도 작은 불만은 있어 보였다. 그런 거 보면 다들 자기 위만 바라보고 살지 자기가 누리는 것에는 감사한 줄 잘 모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에 많이 감사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가끔은 갑자기 걸어가다 구덩이에 푹 빠진 것처럼 허우적 대기도 한다. 그런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우리는 2인가족 체제인데도 한명이 아예 바쁘게 지내니까 같이 어디 나가는 것도 어렵다. 같이 놀러 나가는 것은 한 달에 많으면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귀한 이벤트이고, 그마저도 대단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힘든데 남편은 나보다 더 힘들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불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우리 둘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힘든 얘기를 하는 것은 에너지만 괜히 소모하는 쓸데없는 행동인 것이다. 또 반대로 희망적인 얘기를 하는 것도 은근 터부시되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에서 보았을 때 허황된 꿈을 꾸거나 있지도 않은 일을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행위 자체를 넘어선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현실이 힘들지만 묵묵히 가시를 밟으며 걸어 나가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결국 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나보다 다들 먼저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다. 정말 한손으로 꼽을 정도로 친구들이 많이 없고, 그마저도 다들 1년 이내에 이 도시를 떠날 것을 알고 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기회도 적을뿐더러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학교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자기 회사에 일자리 새로 났다고 나한테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수업 몇 개 같이 들은 게 전부라 사실 친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챙겨주니까 진짜 고마웠다. 물론 나는 내년에 이 도시를 뜬다는 생각에 지원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아파트 렌트 계약을 다시 했다. 1년이 기본 계약인데 매니저와 얘기해서 10개월만 계약했다. 내년 8월에는 다른 곳에 있을 거라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첫 단계라고 봐야겠다. 제발 내년에는 슬슬 다른 동네 집 구경하러 다니고, 지금보다 나아진 환경에서 살 생각에 맘껏 들떠있고 싶다. 오래된 아파트가 아닌 신축에 살면서 볕이 환하게 드는 창을 두고 예쁜 가구들을 놓고 미국 사람들 하듯이 에스테틱 트렌드에 맞춰서 이것저것 꾸미고 싶다.
우리 둘의 세계는 작은 집 한 칸이 전부이다. 나가서 누구 만나는 것도 아니고, 돈도 안쓴다. 돈은 일단 그 자체로 없기도 한데, 그걸 차치하고도 이 도시에서 사회 활동을 안 하니 자기 치장을 할 필요도 없어서 안 쓰게 되는 것이다. 그냥 생활 자체로만 본다면 아메바가 따로 없다. 그래도 강아지 산책은 꼭 해야 하니까 집에서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나간다. 또한 공부를 할 때는 학교 도서관에 가는데, 어차피 아무도 말을 안 걸고 나도 아무랑도 얘기를 안 하기 때문에 언제나 내 버블 안에 그냥 갇힌 채로 이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뿐이다.
얼마 전에는 강아지 산책을 나갔는데, 같은 아파트 다른 라인에 사는 강아지를 세 마리 키우는 사람이 이삿짐 옮기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이나 나나 이 아파트 단지에 몇 년을 살았고, 그동안 강아지 산책 시킬 때마다 서로를 보았기 때문에 이름은 몰라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 집 강아지들은 우리 강아지를 보면 꼭 크게 짖어대는 통에 강아지를 대면시키지 않으려고 각자 마주치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피해 다녔다. 원래 아는 체를 전혀 안 했는데, 올해부터는 그래도 서로 인사하면서 지냈었었다. 그런데 그 사람마저 이사를 간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저 사람한테 언젠가 우리 이사 간다고 얘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때에 그 사람들이 이사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난 언제 이사 가려나... 또 그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공부를 오래 하는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것보다 공부를 택한 사람은 그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많이 아쉬워하면 안 된다. 그 기회비용이라는 것은 단지 공부할 동안 만약 돈을 벌었다면 얼마를 벌었을 것이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사회성 기르기, 매일 일정시간 외출하기, 매일 어느 정도 육체를 사용하기 등 모든 생활 전반에 대한 것들을 통틀어서 얘기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생각하니 남편과 내가 이렇게 사는 동안 포기한 것이 엄청나게 많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모든 것은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기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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