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간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요즘의 우리는 자주 다툰다. 결혼하고 신혼 초에 많이들 그러하듯 우리도 자주 싸웠다. 그러다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싸움은 잦아들었다. 그러다가 요즘의 우리는 다시 자꾸 싸움에 불을 지핀다. 이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싸웠던 신혼 초기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이유일 것이다.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 생활에 많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이 생활로 지쳐 힘들기 때문에 상대를 받아주는 마음 또한 아주 얕아져 버려서 조금만 서로에게 짜증을 내도 그 누구도 그것을 받아주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우리는 가난하다. 가난하게 산지가 꽤 오래됐다. 오늘 우리가 싸우게 된 원인을 굳이 곱씹어본다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밥이 맛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왜 밥이 맛이 없었냐 하면 맛없는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우리 같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음식 재료나 아기 기저귀 등 생필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는 가끔 거기서 음식을 받아 온다. 이런 음식들은 근처 슈퍼마켓에서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지만 상하지 않은 것들을 도네이션 받아 오거나, 혹은 아주 저렴한 통조림들을 기부받은 것들이다. 오늘 저녁 우리는 거기서 받은 재료로 요리를 했다. 아무 건더기가 없는 토마토 수프였는데 거기에 스파게티 면을 삶아서 버무렸다. 맛이 너무 없어서 집에 있는 재료를 추가했는데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에 있던 고기 한 덩이를 구웠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완전히 망쳤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냥 먹는 편이지만, 남편은 좀 달랐다. 남편은 온종일 써지지 않는 논문 생각에 모니터만 들여다보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식사시간뿐이다. 그래서 밥에 대해서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그 식사는 터무니없이 맛이 없었고, 거기서 서로에게 퉁명스럽게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남편은 형편없는 식사를 먹고 싶지 않아 말없이 식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고, 나는 머쓱해져 혼자 식사를 이어 갔지만, 그 어색한 침묵에 더 밥을 먹기 어려워졌다. 잠시 후 그 얼어붙은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가 이유를 따져 물었고 결국 서로 싸우게 되었다.
시간 지나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내가 덜 우울한 입장에서 남편의 힘듦을 보듬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박사과정 내내 나는 그래도 힘들어했던 남편을 잘 받아줬었는데, 마지막이 되어 나도 지쳤나 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서로를 위해 쓸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 시간이 몇 달 더 남았다.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저녁 먹고 둘이 손잡고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나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여유이다. 지금은 이 정도의 바람도 매우 큰 사치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정도의 여유라는 것이 매우 마음 아프고 견디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오늘도 지나가는 어느 날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맘 아픈 시간들이 언젠가는 모조리 지나갈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