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dom akin to feral Aug 18. 2023

남편의 방학과 짧은 휴일

미국의 대학은 대개 5월 초-중순 정도에 방학을 해서 8월 말에 새 학기가 개강한다. 박사과정 학생의 방학이라는 것은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학년 때에는 일주일정도 여행을 할 시간이 주어지거나 했었다. 그러나 고학년이 된 후로는 계속 일-일-일의 연속이었다. 이번 5학년을 마치고 6학년이 시작하기 전의 방학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방학보다도 더더욱 고강도로 쉴 틈이 없이 지나갔다.


남편은 6학년에 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 매우 집중해서 졸업 논문을 썼다. 박사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처럼 그 과정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세세하게 잘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기로는 두 번의 디펜스 과정을 거쳐야 졸업 논문이 통과될 수 있고, 졸업 논문 통과는 곧 졸업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프로포절 디펜스로, 첫 번째 디펜스를 말한다. 한 발자국 떨어져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관찰한 바로, 프로포절 디펜스에 낼 수 있는 졸업 논문의 퀄리티는 그 지도교수의 재량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남편의 지도교수님은 내가 몇 번 뵙고 느끼기에 외유내강한 스타일의 표본이신 것 같다. 선한 인상에 친근하고 유쾌한 성품을 가지고 계시지만, 학생들을 지도할 때에는 그 선한 얼굴 이면에 보이는 카리스마가 학생들을 압도하는 것 같다. 특히 일에서는 매우 꼼꼼하고 정확하셔서 학생들을 대놓고 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알아서 학생들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신다. 아무튼 이런 분이시기에 남편은 지도 교수님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논문을 써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달에 걸쳐서 써낸 문서를 교수님께 보내고, 또 남편은 다른 연구의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함과 동시에, 바로 8월 말부터 시작하는 2개의 수업 준비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라, 다가오는 학회 준비와 프로포절 디펜스 후 잡마켓에 나갈 준비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생활을 보내고 있다.


교수님께 보내야 할 수많은 문서 중 중요한 몇 가지를 보내고, 남편은 잠시 숨을 돌린다. 그마저도 뭐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라 밤 새 술을 마시거나 드러누워서 하루종일 휴대폰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단지 이런 것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가생활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바깥에 함께 나갔다. 전부터 가보고 싶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나는 작은 컵에 바닐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반반씩 나오는 그런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남편은 콜드브루 플로트를 골라서 콜드브루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둥둥 떠서 나오는 음료수를 받았다. 


우리는 가게 뒤편에 있는 파티오로 나가서 적당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가을이 오려는지 하늘이 정말 높고 푸르렀다. 우리는 별다른 얘기를 하진 않았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아이스크림은 너무 많이 담겨져 있었기에 어느새 조금 녹아 테이블 사이 구멍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 동네에서 맞이하는 여섯 번째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의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