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dom akin to feral Oct 13. 2023

남편의 학회에 따라가지 않게 된 이유

미국 학회 이야기

미국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박사과정 때문에 머무르는 가족들은 배우자의 학회가 좋은 여행 구실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한 명의 여행 경비를 학교에서 받기 때문에 (학회 때문에 가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머지 한 명의 경비만 부담하면 되기도 하고, 또 학회가 열리는 곳이 매 번 다른 도시이기 때문에 짧게라도 겸사겸사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박사 과정 배우자 분들이 학회에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에게는 해당하진 않지만, 박사과정 이후에 한국 리턴을 하시는 분들은 학회가 좋은 여행 찬스가 되기도 한다.


가족끼리 가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같은 박사 동료 혹은 교수들끼리도 일정만 맞으면 서로서로 학회가 있다면 겸사겸사 여행을 하러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나도 남편이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 초창기에 남편의 학회 일정에 맞추어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다. 학회 일정이 있는 시간에는 같이 다닐 순 없지만, 그날의 일정이 마치는 저녁시간에는 함께 만나서 짧게나마 돌아다니거나 레스토랑에 가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저학년이었을 때에만 학회 참석 때 동행했고, 나중에는 같이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학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본인이 발표를 하지 않고 참석만 해서 발표를 듣거나 네트워킹만 한다면 상대적으로 참석의 부담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은 학회 참석 때마다 항상 적어도 한 번은 세션 중 발표를 해야 했기에 내가 따라간 여행에서도 우리가 마음 편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날 그날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도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본인 연구에 대한 발표를 계속 연습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 남편에게 짐이 되기 싫은데 괜히 따라와서 나를 케어하느라 남편의 일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덩달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남편이 참석하는 학회에서는 일정이 끝나고 같은 분야의 사람들끼리 저녁을 먹으며 네트워킹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 학회에서는 그 분야를 공부하는 한국인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기에 한국인 모임도 많이 열렸다.


그러나 내가 학회에 따라간다면 남편이 그런 모임에 참석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와 시간을 보내느라 중요한 네트워킹 자리에 남편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남편의 학회 일정에 동행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내가 따라간다면 분명 좋은 점도 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받을 수도 있고, 간 김에 학회 이후에 일정을 늘여 여행을 연장할 수도 있다. 짐을 나누어 들거나 남편이 필요하다면 보조로 일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박사 졸업 전 마지막 학회인 이번 연도 학회에 내가 따라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면서 박사 과정 중 학회 참석 동행 기회는 이제 없을 것 같다.


요 몇 달간 이번 연도에 열리는 학회 준비로 남편은 고생 중이다. 학자의 길이라는 게 항상 연구를 해야 하고, 연구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비단 내가 가장 가깝게 보는 남편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과를 불문하고 내 주변의 많은 박사 과정 학생 친구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새삼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남편이 이번 학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방학과 짧은 휴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