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Proposal Defense 혹은 Prospectus Defense라고 불리는 디펜스를 통과했다. 박사과정에서 몇 개의 큰 마일스톤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이제 남편은 일반 Ph.D. candidate에서 ABD (All But Dissertation) 상태로 진화를 했다.
이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남편은 무수한 나날들을 고통과 스트레스로 보냈다. 박사과정 배우자를 만난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그와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중이다. 준비과정 내내 우리는 거의 잠을 못 잤다. 내가 평균 4시간 반 정도 수면을 취했으니, 남편은 나보다도 더 적게 잤을 것이다.
내가 디펜스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요 근래에는 항상 긴장 때문에 어깨가 굳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어서 숨 쉬는 것도 항상 힘들었다. 나는 밤마다 남편 등과 어깨에 파스를 붙여줬는데, 그의 양 어깨에 얹혀있는 부담감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프로포절 디펜스 당일, 나는 남편보다 1시간 먼저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준비했다. 남편은 곧 일어나 어젯밤 하던 발표 리허설을 했고, 차려준 밥을 거의 남기다시피 먹었으며, 샤워를 했다. 그동안 나는 양복을 준비해 두고, 가져갈 물도 챙겼다. 우리는 곧 출발하여 학교로 향했다.
조수석에 남편을 태우고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는 날이 가끔 있는데, 오늘은 그날 중 하루였다. 7년간 매번 가던 똑같은 학교 가는 길이 오늘따라 왜 이리 긴장이 되던지. 속력을 내는 것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조심스럽게 했다.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조수석에 앉아 계속 발표 연습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방해가 될까, 신생아를 태우고 운전하듯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남편을 내려다 주고 건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한껏 긴장되어 얼굴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건물로 향하던 남편을 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다.
나는 차를 돌려 파티시티로 향했다. 그동안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들이 프로포절 디펜스를 마칠 때마다 나는 커다란 헬륨 풍선을 사서 그들과 함께 축하를 했다. 오늘은 드디어 친구들이 아닌 남편의 풍선을 사러 갔다. 지금껏 항상 예쁘고 화려한 풍선을 샀지만, 오늘은 그보다도 더 멋지고 근사한 풍선을 샀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자책을 가져가 집중을 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긴장이 되어서 책이 잘 안 읽혔다. 커피도 마셔보고, 책 종류도 바꿔보고 했지만 가슴이 조여와서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 결국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발표는 다 마쳤고, 이제 심사 중인데 잘 못한 것 같다고... 난 남편에게 너무 수고했다고, 만약에 잘 안 됐더라도 다시 하면 된다고 얘기를 했다. 뭔가 속 시원하게 잘 됐다고 할 것 같았는데 잘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니 침착하게 있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시간이 계속 흘러도 남편에게 연락이 오지 않다가 나중에 끝났다는 문자가 와서 나는 남편의 과가 있는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과를 묻는 말에 답장이 없어서 너무 걱정이 됐다. 학과 건물에 도착해서 둘러보았지만, 남편을 찾을 수 없었다. 답장도 없었다. 나는 런치룸에 자리를 잡고 그냥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면서 남편을 기다렸다. 아직 결과는 모르는 거니까. 커미티 중 한 분이 매우 깐깐하시다던데 그게 문제였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이 어디에 있냐고 연락이 왔고, 곧 런치룸으로 들어오는 그를 만났다. 조심스럽게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는데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놀라운 축하가 아니라, 뜨거운 눈물이 글썽거리는 축하를 했다. 남편의 말을 들으니 안도감이 들었지만, 긴장이 과했는지 계속 흉통이 아팠다. 나는 남편을 안아주며 정말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말했다.
뛸 듯이 놀란 순도 높은 기쁨이 아닌, 긴긴 고생 끝에 주어진 짧은 단비 같은 이런 종류의 성취를 느낀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순간들을 겪을 때마다 박사 과정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져 간다. 다들 어찌 살아남으신 겁니까...
우리는 안도하며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힘들었는지 오자 마자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