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에 누군지 모를 외국인과 마루에서 탁구를 치다니
스포츠 경기를 보면 바로 따라 하고 싶어하는 타입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양궁경기를 보면서 양궁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 펜싱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신유빈이라는 어린 선수가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 탁구라도 한 번 해보자.
기억해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동네에 탁구장이 많이 있었다. 가장 최근은 7년전 직장에서 회사 사람들과 탁구로 팀웍을 만들어 나가곤 했다. 그런 기억으로 오큘러스 퀘스트의 탁구 게임을 바로 구매했다.
이 만들다 만것같은 디버깅 메세지 투성의 UI에 실망을 했지만, 실제 탁구는 그럴 듯 했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탁구를 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게임을 실행하고 컴퓨터와 열심히 탁구를 연습한다.
또깍또깍
옆에서 와이프는 비웃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대결' 신청이 들어온다.
'어 네트웍 플레이를 꺼놨던 것 같은데'
그래도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즐기지 않았던가? 과감하게 대결을 받아본다.
흐익, 앞에 고양이인지 너구리인지 탈이 하나 있고 탁구채를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목소리도 들린다.
"Whrer are you from?"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anonymous 들과 채팅을 해본적은 있지만, 아바타지만, 몸과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다. 그 가면뒤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것이 메타버스의 세상인가.
그냥 조용히 서브를 넣었다
2:0으로 패배하였다.
그 뒤에 또 다른 사람이 대결 신청을 한다.
한국 사람이다. 마이크가 켜있는지 모르나 보다. 혼잣 말이 들린다.
"아.. 이거 어렵네.. 음.. 어.." 이런 소리다.
역시 마이크를 뮤트로 하고 조용히 서브를 넣는다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과 VR 탁구를 쳤다
먼저 대결을 신청한 적은 없지만, 신청이 5분만 있어도 들어온다.
실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아주 얍삽이로 치는 사람
한번 칠때마다 손짓으로 박수와 격려를 해주는 예의있는 사람
뭔가 초고수로 보이는 탁구왕.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밤 11시에 자기 거실에서 헤드셋을 끼고 탁구를 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탁구를 잘치는 생활체육인들이 이렇게 많다니
마이크는 끝내 켜지 못했지만,
텍스트 없이, 몸 동작으로 저 어딘가 너머의 사람들과 땀을 흘리는 이 경험은 섬뜩했다.
그래도 종종 탁구는 칠거 같다.
언젠가 한번은 이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