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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청개구리

설마 청개구리 같은 미련한 짓을 할까? 하지만..

by 안필수연구소

오랜 기간 동안 편찮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소식을 듣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음날 장례식장인 정읍으로 향했다.

7 남매의 외삼촌과 이모들, 그에 딸린 사촌들.

많은 식구들이 바글바글하여, 딱히 일손이 부족해 보이진 않는다.


분향을 드리고, 식사도 하고,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한다.


부모님은 와봤으니 됐다고 얼른 올라가라고 하신다.

회사 출근도 해야 되지 않냐며 올라가라 하신다.

낮에는 엄청난 폭염이었나 싶더니, 밤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일단, 아이들 핑계를 데고 폭우를 뚫고 올라왔다.


발인 전에 혼자라도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가 온다.

아버지다.

와봤으니 됐다고, 절대 오지 말라고, 외손주가 와서 뭐하냐고, 여기 사람 많다고.

어머니가 또다시 전화가 온다.

혹시나 다시 내려올 생각하지 말라고, 진짜라고.


태풍인지 뭔지 비가 많이 온다.

어제 무리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새벽 6시.

출발해서 가기에 빠듯해 보인다.

비도 많이 온다.

월간 회의가 있다.


결국 회사로 출근했다.

8시 30분부터 시작된 긴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혼자 커피를 들고 옥상에 올라간다.


갑자기 커다란 회한이 밀려온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지 못한 듯하여 죄송스럽고 서운해진다.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몇 년 전 친할머니 돌아가시던 생각이 난다.

첫째가 막 태어나고 한 달 뒤쯤 돌아가셨다.

추석이 막 지나고 두 주쯤 후였다.


첫째가 태어나 아직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추석에 찾아뵙질 않았다.

첫 증손주를 소개하여드릴 수 있었는데, 한참 신종플루니 뭐니 하며 신생아들의 외출을 꺼릴 때였다.

부모님이 절대 오지 말라고 하셨다. 100일 지나서 인사드리면 된다고.

그리고는 결국 영원히 첫 증손주를 보여드릴 수 없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살면서 큰 후회 없이 살아왔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고 큰 후회를 했었고, 이번에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발인하는 날 또 비슷한 후회를 하게 된다.평소에는 그렇게 잘 듣지 않았던 부모님 말씀을 왜 꼬박꼬박 들었는지.


그래 생각없는 청개구리였구나.

옥상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제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말아야겠다고.

편찮으시고, 힘드셔도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봐 절대 부탁하거나 내색을 안 하시는 양반들이다.

이제 청개구리 짓은 그만 둬야겠다.


- 할머니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