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약속의 의미, 당신의 의미

1월 16일

by Yuna Jung

학창시절에는 친구 사귀는게 수고스러운 일이라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 가면 내가 어떤 클래스에 속하는지 정해져 있고, 짝꿍도 선생님이 정해준다. 굳이 누구와 더 친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그 관계는 ‘같은 학교’, ‘같은 반’, ‘같은 동아리’ 란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집단’에 의해 좋든 싫든 만나야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친구는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적어도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상호관계가 발생하는 친밀한 사이로 진화한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는 순간, 친구 사귀는 일이 ‘일’로 느껴지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나름의 결단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해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이 문제는 더욱 날것으로 다가온다. 가족은 멀리 있고, 그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들과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시차 문제로 소통의 계기가 줄어든다. 당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니 모든 신경과 에너지는 ‘생존’과 ‘적응’에 집중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 이제 좀 정착하려나 싶을때 주위를 돌아보면 그동안 내 전부였던 친구들은 이미 멀어져있 고 해외에서 만난 인연에게 먼저 연락하고 친구가 되어보자 하니 머쓱한 기분과 알듯말듯한 벽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가 지나면서 해외에서의 인간관계는 더욱 단조로워 지고 누군가의 떠남과 새로운 합류에 대해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렇게 스쳐지나간 수많은 인연, 좋은 친구로 계속 같이 있을줄 알았는데 이제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잘 지내고 있길, 어느날 우연히 만나도 기쁜 마음으로 일상을 나눌수 있길’ 염원하는 마음은 늘 간절하다.

지난 목요일에 정말 오랜만에 여자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결혼이후 부부동반 만남을 자주 가지지만, 오롯이 나만의 친구들끼리 여자들만의 시간을 가지기 쉽지 않았다. 모두 가정이 있으니 더더욱 한번 만나려면 아무 미리부터 날짜를 박아놓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D-day가 왔고, 두바이 교통체증을 뚫고 두바이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동네라 자부하는 Dubai International Finance Center(DIFC)에서 제대로 즐겨보자 여자 3명이 모였다. 두바이는 뉴욕, 런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화려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DIFC에는 미쉘린 스타 쉐프가 있는 화려한 데코의 식당이 많아 골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날 우리는 Josette이라는 프렌치 식당을 갔다. 초록색과 핑크색을 적절히 조화롭게 쓴 식당은 프렌치 식당다운 메뉴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애피타이저로 비프 타르타르(Beef tartar), 달팽이요리( Escargot), 가지요리(Eggplant Mille-feuille), 새우요리(Sauteed prawns)를 주문했다.

- 비프 타르타르 : 프랑스 사람들도 육회를 즐겨 먹는다. 생 소고기를 칼로 잘게 다져서 양념을 하고, 계란 노른자를 올리고 빵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대부분의 인터내셔널 메뉴를 갖춘 식당은 애피타이저로 제공하지만 프렌치 스타일을 고집하는 식당에 가면 메인 코스로 비프 타르타르를 내오기도 한다.(개인적으로는 메인으로 주는 비프 타르타르를 매우 좋아한다)

- 달팽이 요리 : 에스까르고라고 잘 알려진 프랑스 대표 요리다. 식용 달팽이위에 마늘과 버터 파슬리를 올려서 뜨거운 그릇에 내어준다. 달팽이 껍질째 나오는 요리로 껍질을 잡고 속을 파먹을수 있는 도구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 몇개 안먹었는데 금새 바닥이 나는 요리다.(나는 이 버터소스에 빵 찍어먹기를 좋아한다)

- 가지요리 : 가지를 얇게 저며 토마토 소스를 올려 치즈와 구워내는 요리로, 라자냐와 라따뚜이의 중간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호불호 없는 야채요리다.

- 새우요리 : 새우를 올리브오일과 파프리카 파우더에 살짝 데쳐낸 요리다. 새우의 적당한 익힘이 중요하고, 같이 나오는 올리브 오일이 이 요리의 Key다.( 남은 올리브 오일에 빵을 찍어 먹다보니, 설거지한듯 올리브 오일이 다 사라져 버렸다)

애피타이저후 750그램의 립아이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 감자그라탕을 메인 코스로 주문했다. 서양에서는 각자 한개의 음식을 시켜서 자기 앞에 놓인 것만 먹는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지만, 요새 Fine Dining 트렌드는 Sharing platter 컨셉을 내세우는 곳이 꽤 많다. 스테이크는 어마어마한 양에 짓눌려 이미 먹기도 전에 배가 불러왔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피곤한 회사 업무는 잠시 잊고, 웃고 떠들다 보니 반즈음 감겼던 눈이 다시 말똥말똥해지는 트랜지션의 순간을 느꼈다.

이날 6시부터 만나서 10시까지 끊임없이 웃고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서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는 것, 해외에서 살아서 인간관계가 제한적이라는 것 모두 내가 만들어낸 핑계가 아닐까? 내 주위에는 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늘 그 자리에서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는데, 그 문 손잡이 잡기를 뿌리친 것은 내가 아닐까? 내 MBTI는 INTJ니까, 난 사람들 하고 어울리는걸 원래 안좋아한다고 고정관념을 만들고 속단한 건 아닐까?

친구를 새롭게 사귀고 만나는 행위 역시 노력이 필요하고, 배려가 필요하다는걸 잊고 있었던것 같다. 과거의 내가 잠시 가졌던 ‘다가와주면 고맙고, 떠나가도 상관없다’라는 태도가 해외생활을 더 건조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그날, 그녀들과 헤어지며 집에 걸어오며 깨달았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모두 내가 만든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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