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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rette Sep 24. 2019

2008 일본 자전거 노숙 일주 #3

일본을 자전거로 관통하던, 그 셋째 날.

미칠듯한 업힐.




정말 잘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제 만났던 형은 이미 떠났네요.

친구랑 저는 느긋하게 씻습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하군요.

오늘 일정도 거뜬할 것 같습니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이 맛!


인도 뿐만 아니라 갓길도 넓고 반듯반듯해서

미끄러지듯 달려갑니다.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이릅니다.

일본의 농촌 풍경이라하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군요.

제 고향이 시골이라서 그런걸까요.

다만 집들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목조 건물에 기와로 된, '일본풍'의 집들이 많죠.


목이 말라서 민가로 가 물을 얻어봅니다.

감사하게도 차를 주시는군요.

일본은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정수기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지만(식당 빼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래도 수돗물 마시는 일본인은 못봤습니다.

힘 없고 집 없는 외국인만 마시라 이거죠, 췌

대부분 차를 끓여서 먹던지 아니면 사먹던지 하는 문화입니다.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산기슭에 들어섰어요.

헥헥, 열심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업힐이 꾸준히 지속되는군요.

아직 말근육화 되지 못한 제 다리로서는

사진찍는 척하며 물마시는 척하며 쉬어줘야합니다.


산요도(山暘道)를 따라,

야마구치(山口)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 이미 야마구치 현이던가요.

이름답게 평지를 보기가 힘들군요.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집입니다.

멋있고 자연친화적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겨울엔 꽤 추울지도 모르겠군요.

2번 국도인지 지방도인지 헷갈릴 정도로 길은 좁아졌습니다.

고속도로로 가라는 일본 정부의 무언의 압박인가요.

그래도 우리의 트럭 운전수들은 열심히 국도로 달립니다.

이런 시골에 자전거 도로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리고 마주친 문명의 흔적. 일본 여행 내내 애용했던 세븐 일레븐!

대형 할인마트 앞에 떡하니 자리잡아 열심히 낚아대는 로손과는 달리

험한 곳, 문명에서 외진 곳에도 자리잡고 있어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입니다. 언제나.

아아...또 산인가요.

산넘어 산이라는 말이 실감됩니다.

그래도 이 산에는 계곡이 있군요.

내려갈만한 길이 없어, 대충 논에 물대는

도랑에 발흔들며 쉬어봅니다.

자뻑 셀카도 한컷 찍어보고요.


달리다보면 자전거 라이더가 진입할 수 없는 도로가 나옵니다.

그럴땐 언제나 '우회로'가 있게 마련인데

한번씩 이 우회로가 말썽을 피울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지요.

잘 달려가다가 웬 기찻길?


사진방향 말고 사진 반대쪽 방향을 바라보니 레일을 지나는 길이 있는듯 합니다.

결국 반대쪽이었네요.


하지만 돌아가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레인을 넘어봅니다.

기차가 오나 안오나 긴장됩니다.

이것이 스릴인가 봅니다.

먼가 억울하군요.

저기 바로 도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회를 해야 되다니.


기찻길 넘느라 꽤나 힘들었습니다.

날은 한여름, 땡볕은 내리쬐고 있으니까요.

민가에 들러 물이나 얻어 봅시다.

"스이마셍~ 다레모 이마셈까?"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군요.

물을 주시면서 무어라무어라 말씀하십니다.

사투리가 좀 섞인 터라 알아듣기 힘들군요.


여기서 짜투리 정보!

노숙이나 물을 얻다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을 많이 거는데요,

대충 말이 길어지신다 싶으면 '하이,하이.' 이러면 만사 ok입니다.

보통 묻는 말 빼고는 뭐 수고한다, 고생하네, 대단하네, 나도 10년만 젊었으면...등등

이런 말씀이란 말이죠.

토마토를 주신다기에 감사히 받아봅니다.

큼직하고 단단한 것이, 정말 잘 익었네요.

근처에 논 도랑에 흐르는 물에 씻어

맛있게 먹어봅니다.


'캬~! 바로 이것이 여행의 맛!'

새콤달콤한 토마토의 힘으로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인사하며 헤어집니다.

산요도의 특성상 야마구치로 향하진 않습니다.

내일 히로시마에 도착할 예정이라,

대충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 중간의 도시에서 머물 생각입니다.

야마구치와 방향이 갈라지면서, 이제 좀 평평한 땅이 계속되는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토마토로는 끼니가 되지 않는군요.

배부르게 먹었지만, 순식간에 꼬르륵 거립니다.

저 도시에서 밥을 먹도록 합시다.

맥도날드를 물어봤으나 없다고 하시길래

다른 패스트푸드점은 없냐고 물어보니 모스버거가 있다고 하는 첩보를 접수.

일본 고유의 햄버거집, 모스버거를 정복해봅시다.


가이드 북에 따르면 맛 하나는 죽이다던데, 어떨까요.

점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무려 600엔이 넘는 세트를 시켜봅니다.

이름하야 '핫또 치킨'

맛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드셔보십시오.

이렇게 패스트푸드점의 구석구석을 잘 활용해주는 센스!

베테랑 여행자가 다 된 느낌입니다.

몸과 영혼과 밧데리가 모두 충전되었으니

이제 달려봐야죠.

제법 큼직한 호수를 만났습니다.

호수 속에도, 그리고 호수 건너에도 도리이가 보입니다.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갈길이 바쁜고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 여행이 자유로운 여행인건 분명하지만

길에서 많이 벗어나는 곳을 쉽게 갈 수는 없으니.


왠지 아쉽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는 없기에

그저 완상하며 지나칩니다.

그저 도로를 따라 달리는 것인데도

종종 우회길을 타게 되는지라

이렇게 기분좋은 숲 속 라이딩이 가능하군요.

이름 모를 도시를 지나칩니다.

아, 바다입니다.

힘든 라이딩 속에서도 이런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콧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어이쿠, 위험할 뻔 했군요.

급한 내리막길에서 이렇게 막아두면, 위험한데 말이죠.

하아...저 업힐만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그나저나 생긴 모습이 꼭 고향 마산에 있는 밤밭고개같이 생겼습니다.

물론 규모는 2배가 훨 넘지요.

아까 그 고개는 억울하게스리 도로를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마을을 관통해서 올라가봅니다.


쭉 뻗은 고속도로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힘없는 자전거 라이더는 열심히 끌바로 올라갑니다.

그 옛날엔 호랑이가 나올법했을 그런 곳입니다.

밤에 이 길을 지나갔다면 분명히 무서웠을 거에요.

특히 해질 녘의 쓰르라미 소리는 꽤나 섬뜩합니다.

다 올라왔습니다.

이제 도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오, 슈난시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워지려는데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슈난 시에 도착해서 저녁밥을 먹습니다.


꽤나 피곤하군요.

달리면서 적당한 공원을 찾습니다.


이런저런 헤프닝이 있고 난 뒤,

고단한 몸을 누입니다.

모기에 뜯겨가면서, 미칠듯했던 업힐을 생각하면서.





시모노세키 → 슈난

Distance - 109.44km

Average Speed -  13.7km/h

Riding Time -  7:55:51

Max Speed - 49.8km/h



[오늘의 노숙]

슈난 시내의 허름한 공원.


(사진이 없는 이유는, 내일 여행기에)


노숙지수 : 2

단점 : 모기 많다. 장애인 화장실은 불이 안들어와서 사용불가.

장점 : 사람 없다. 그러나 의외로 통행인이 있는듯?

메모 : 장애인 화장실을 쓸 수 없어서 여자 화장실에서 내 친구가 샤워하는 도중

          어떤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오려고 하셔서, 입구에서 제지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던데...여기선 자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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