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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3. 2023

백마리 개, 허공에 던지는 말.

7. 감정을 담아서.

찰나의 순간이 또렷한 장면이 되어 버린다. 다투는 개를 보고 사납다고 말한다. 구석에 자리 잡은 개를 우울하다고 여긴다. 하루도 아닌 1시간 남짓 머물며 본 것들로 1년을 유추하려 한다. 이렇게 섣부른 판단으로 사납고 우울한 개가 탄생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일


나의 주된 일이다. 백 마리 뒤치닥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청소하고 밥 주는 뒤치다꺼리로 개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청소를 열심히 하는 만큼 개들이 잘 지낼 리도 없다. 그래서 가만히 앉는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이리 보낸다. 백 마리 개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멈춰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앉아서 하는 일은 없다. 말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래서 힘든 일이다. 개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몸이 바쁘게 움직이면 생각할 여유는 줄어든다. 반대로 몸이 느려지면 생각에 잠길 시간이 늘어난다.


이런 짓을 왜 하는지 궁금할 거다. 생각에 잠겨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틀렸다. 앞서 이미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가? [말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개를 돌보는 일 외에 잡일을 시작하지도 벌리지도 않기 위한 방책이다.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비치더라도 상관없다. 게으른 사람은 나태해지는 것도 어렵다.




사람이 맡긴 개


버려진 개 따위는 없다. 우리가 만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일 뿐이다. 누군가 구조하여 데려온, 즉 사람이 맡긴 개뿐이다. 백 마리 개 뒤편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를 맡긴 사람의 '바람을 들어주는 일'을 하는지 모를 일을 하게 된다.


사나운 개가 얌전해지고, 소심한 개가 활발해진다. 하루아침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좋은 쪽으로 변한다. 상태가 더 나빠질 이유를 줄였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하나 이 사실은 나만의 비밀이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니,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비밀이 된다. 개를 맡길 당시의 모습만 사람들은 기억한다. 나아가 그 기억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한 마리를 입양 보내려 했었다. 사나운 개였지만 입양 보낼 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양을 포기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나운 개였다는 사실을 왜 숨겼냐고 묻더라. 개를 맡긴 사람이 따로 입양자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었다. 별 말 하지 않았다. 설득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기억에 갇힌 사람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년간 정성을 들여 반듯한 삶을 살도록 만들었지만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불쌍한 면을 찾으려 애쓴다.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불쌍하다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개가 잘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불편했을까?


상식 밖의 일이다. 그리고 현실이다. 몇몇 사람들은 가장 불쌍한 개의 구조자가 되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기를 바란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가장 주목받던 시절의 기억을 붙잡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 해도 그때 기억에만 머물면서 말이다.




내 글에 감정이 지나치게 묻어난다고 한다. 오늘 적은 글도 마찬가지 일거다. 화가 났던 것은 아니다. 글에서 말한 사람들에게 실망한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었나 싶다. 독자라는 대상을 정하지 않고, 그저 허공에 소리치듯 던지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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