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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4. 2023

백마리 개, 거기 외로움

9. 타인의 부재와 상관없이.

택배 기사가 반갑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무뚝뚝한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 인사를 받아준다. 가끔 기사님의 오늘 고충을 들어주는 일이 즐겁다. 택배차가 떠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말할 필요도, 말해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백 마리 개들 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말을 더듬는다.


어릴 때부터 어울리는 일이 어색했다. 집안 환경 탓에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이 집에서 쫓겨나 저 집에서 잠을 청할 때면 차라리 골목길에 혼자 있고 싶었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말을 잃었다. 가슴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데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심하게 더듬었다. 나중에는 수첩을 들고 다녔다. 의사소통을 위해 필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도 말을 더듬는다. 말을 더듬지 않을 요령을 익혔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속으로 완전한 문장체를 먼저 만든다. 이를 버벅거리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찌어찌 먹고살게 된 일이 이런 일이라서 말이다. 말을 더듬어도 아무 문제없는 일을 한다. 필요한 일들은 대부분 글로 적어 전달한다. SNS나 메신저에 음성을 녹음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백 마리 개를 돌보는데 말을 더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름은 두목이다.


거리두기


더듬어서 타인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 일이 개를 돌보는 일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두려웠다. 남들과 다른 하루를 보내고 출퇴근의 개념도 없다. 누군가의 여유로운 저녁식사가 나에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 나가야 하는 업무였다. 사람이 친해지면 밥 한 끼 먹는 약속정도는 하게 된다. 그것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가볍게 안부만 물어보는 정도가 편했다. 생일을 챙기는 것도 하나의 약속이기에 무시했다. 메신저에 알아서 뜨는 나의 생일을 숨김으로 해놓았다. 지나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돌보는 개들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늘 말해왔다. 적당한 이유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열정이 식은 것인지, 아니면 외로움을 들먹일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받은 후원품, 뒤로 그저께 떠나보낸 개의 유골함이 보인다.


결국 위로였을까?


외롭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의 이유가 타인의 부재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고민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집을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해결되었을 테니 말이다. 해결책이 없는 외로움일까? 아니면 굳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외로움일까?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외로움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혼자서 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의문을 던진 적도 없었다. 괜찮아 보이는 백 마리 개의 오늘은 그런 고집으로 만들어졌다. 생각해 보니 외로움을 떠올린 것은 최근이었다. 바쁘게 달려 나갈 때에는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담배를 한 대 피운다. 담배 하나만큼 위로받기가 어렵나 싶다. 결국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이만큼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고작 그런 이유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나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믿어 왔다. 억지를 부렸었나 보다. 지금도 글로서 나를 알아봐 달라 간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관심을 주었던 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일까? 흥미 없는 것들을 밀어내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하나가 남았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변화를 나만 몰랐을지도. 그래서 이리 잠시동안 외로움을 느끼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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