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김나예은 작가님이 전에 커피로 염색한 종이를 묶어 만든 아름다운 노트 두 권을 주셨을 때 표지에 적혀 있던 글귀다. 작가님의 좌우명이라 했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심오한 진리에 나는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아무도’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는 작가님의 친절한 팁이 더해졌기에 더욱 그랬다.
포스트모더니즘도 훌쩍 벗어난 21세기에도 여전히 고정관념과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감히 저질러볼 수 있는 파격과 혁명과 전복(顚覆)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를 참으로 부드럽고도 명확하게 안내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섹스에 법칙이 있을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 하겠으니, 조금 더 친절하게 풀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나와 상대의 마음과 몸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라”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해치지 않는다’이다. 해치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폭력이 아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럼 섹스에서 폭력이란 무엇이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폭력의 경계는 행위의 당사자들에게는 분명하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프거나 다쳤거나 고통스럽다면 폭력이다. 그런데 제3자가 보기에는 아슬아슬할 수 있다. 축구 경기 중의 거친 몸싸움이나 강아지들이 서로 깨물며 뒹구는 모습 등이 얼핏 폭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여자와 남자 약 70명가량 모인 워크숍에서 ‘섹스할 때 머리카락 휘어잡히는 거 좋아하는 사람? 뺨을 찰싹 맞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엉덩이 때려주는 거 좋아하는 사람?’ 등의 질문이 던져졌을 때 거의 모든 여자들이 웃으면서 손을 들었었다.
섹스라는 유희는 다양한 레벨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생명이라는 현상의 뿌리에서 꼭대기까지 모두 아우른다.
맹목적 원시성
무질서와 붕괴
유혹과 도취
지배와 복종
보호와 배려
정화와 성결
초월
신성
이러한 에너지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극에서 극까지 망라한다.
섹스의 유희는 어떤 형태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와 상대의 마음과 몸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섹스의 분위기를 크게 부드러운 쪽과 거친 쪽, 둘로 나눈다면 아무래도 위험성이 따르는 게 거친 쪽이라 새로운 시도를 꺼리고 겁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섹스란 언제나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꽃향기처럼 감미로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거칠고 원시적인, 혹은 무자비한 느낌의 섹스를 선호하기도 한다.
파트너가 침대 기둥에 팔다리를 묶어주었을 때 최고의 흥분을 맛보았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피지배욕이라고 본다. 어떤 강한 힘에 지배당하여 온전히 복종하는 느낌은 무척 황홀하다.
왜냐면 자아(Ego)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에고는 자의식을 만들어낸다.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평가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 피곤하다.
그러니 이 에고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완전한 복종 상태에 놓일 때에 희열이 생기는 것이다.
피지배욕, 복종의 욕구가 사회적으로 발현되는 일은 오히려 흔한데 이것은 정말로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존재인 만큼, 바로 그 자유의지와 독립성을 어떤 숭고한 가치, 위대한 인물, 혹은 신과 같은 절대자에게 모두 바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정말로 변치 않는 가치나 흠결 없는 인간이나 타락하지 않은 종교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집착한 이념이나 인물이나 종교에 계속해서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관성이다.
이러한 관성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각성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고를 확장해야 하는데, 천성적으로 게으른 인간의 뇌는 이러한 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뇌과학에서 밝혀진 이론이다.
피지배욕을 사회적 관계로 발전시키지 말고, 잠시 섹스에서만 색다른 놀이로 즐기도록 하자.
팔다리를 잠시 묶이거나 눈을 가리거나 머리채를 휘어잡히거나 하인처럼 시키는 대로 따른다거나 하는 것들은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 차원과 같은 섹스의 유희가 될 수 있다.
한편 일시적인 피지배 상태에서 풀려날 때의 해방감은 섹스가 주는 해방감과 통하기도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마사지나 테라피처럼 행해지는 서비스인데, 팔다리를 접고 온몸을 꽁꽁 묶어서 공중에 매달아 잠시 명상 상태를 진행한 다음 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프지 않게 골고루 묶어주는 매듭은 모양부터가 상당히 예술적이다. 활동의 자유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로 꼼짝없이 공중에 매달렸을 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차원으로 들어가 오히려 내면의 평안을 얻게 되며, 풀려났을 때에는 새로운 해방감을 선물 받는다.
어떤 행위가 새디즘 혹은 매저키즘이냐 하고 따지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며, 중요한 건 섹스의 유희에 폭력은 절대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철칙이다. 단 거친 것은 폭력적이라는 등식은 너무 유치하다. 손이 안 닿는 등을 시원하게 좀 긁어달라고 했는데 상대가 손바닥으로 슬슬 문질러주고 말았다면 폭력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약올림이 어쩌면 폭력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에 불감증과 성교통을 갖고 있었을 때 한 친구는 나에게, 섹스란 모름지기 짐승처럼 해야 한다고, 짐승처럼 하지 않아서 섹스의 맛을 못 느끼는 거라고 충고해줬었다. 이런 식의 남의 충고는 하등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성향이 있다.
터프한 힘과 파운딩(pounding)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질나는 애무와 짓궂은 장난(teasing)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터치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질펀하고 더티(dirty)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제각기 다르고 게다가 이 모든 성향은 언제든 어떤 계기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섹스에는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는 말로도 하고 몸으로도 한다. 조금씩 색다른 시도를 해보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자.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다정하게 물어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