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틈

by 유주얼


꽃을 흔들던 저녁 바람이

내게로 올 때


떨굴 것 하나 없는 나를

온통 스치고 지나갈 때

밋밋한 알몸인데

멀고 먼 조상의 기억인지

수북한 털이 날리듯

얇은 비늘 겹겹이 물결에 쓸리듯

친숙하고 서글픈 감각

올올이 공허를 훑고 갈 때


모든 세포벽을 통과하여 지나갈 때


가녀린 이파리 하나 없는 나를

되려 파랗게 얼어붙는 나를

오래된 슬픔만 붉어지는 나를

흔들고 지나갈 때


멈추는 숨

그 숨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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