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날

by 유주얼


딸기는 문드러져 있었다

제값을 못 받고

어떻게든 팔자니

아저씨는 목이 쉬었다

왕창 가져가서

주스도 갈아먹고

잼도 만들어 먹으라고

딸기는

점점 문드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달고 싼 딸기를

마다하느냐고

아저씨는 애원을 했지만

된장국에 시금치를 넣어

겨우 밥해 먹기도 힘든 나는

가벼운 장바구니가 서러워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 힘은 없었다


무엇보다 암담한 건

한 알의 딸기에 서린 하찮은 존엄

남의 살과 닿아서 물크러진 상처투성이

곳곳을 도려내고 몰골이나마 건져야 할지

고단한 칼질 멈추고 통째로 버려야 할지

알알이 망설이게 만드는

헐값의 미련이 지긋지긋했다


죄송하다며 돌아서는

내 마음은 차가웠고

그 많은 딸기를 버리게 될 것만 같은

아저씨의 마음은 얼어붙었다

푸근한 건 날씨뿐

딸기는 계속 문드러져가고 있었다




-부연-

이 시를 쓴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이제는 다행히 딸기 한 알에도 서러움을 느낄 만큼 위태로운 삶은 아닌 것 같지만, 외피라고는 없어서 늘 상처에 취약한 딸기처럼 삶은 어떤 형태로도 단단해질 수 없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