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기적

2024년 4월의 일기

by 이현

어느덧 100일 하고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100일의 기적이라더니, 육아 난이도가 급감했다.


단적으로 그럭저럭 통잠이 가능해진 게 첫 번째 이유다. "ㅇㅇ이는 오후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잔다더라."는 말에 나도 괜히 7~8시부터 재워보려고 시도하다 요즘은 수면패턴이 오히려 꼬여버려서 실패를 맛보고 있지만. 아무튼 100일 즈음부터 12시에 수유를 하면 아침 7시 반까지는 잘 자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누적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두 번째로는 눕혀 재울 수 있다는 점. 든든이는(이라고 불러놓고 갑자기 맘이 짠하네. 100일까진 든든이, 그 후로는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사람 품을 좋아하는 아가였다. 손을 타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관리사 선생님이 방에 오셔서 "든든이는 다른 아가들보다 유독 안아달라고 많이 칭얼대요."라고 하셨다. 그땐, 아가가 왜 우는지 어떤 상태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엄마였기에, '안아달라는 울음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반신반의하며 한 귀로 흘렸었다. 조리원을 조기퇴소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산후도우미 선생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산후도우미 서비스 기간이 끝나고 내가 온전히 아이를 맡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든든이는 품에서 곧잘 잠들다가도 눕히면 눈을 번쩍 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등센서 예민한 아기 눕히기' 같은 방법들도 다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번갈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아기를 안고 소파베드에 기대어 밤잠도 쪽잠을 이루어야 했다. 이 악물고 수면교육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앞에 있는 신생아는 그런 걸 견디기엔 너무 작아 보였다.

'10년 20년이 지나도 평생 나에게 안겨 자겠다고 하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사람 품에서 떨어져 있는 게 불안해 잠도 오지 않는 지경이라면. 그래, 까짓것 맘껏 안아주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110일 정도가 지나고 아가는 8킬로가 되어서도 내 품에 꼭 붙어 잠을 잤다. (이때쯤엔 낮잠은 안겨서 자고, 밤잠은 골아떨어졌을 때 눕혔다.)

눕혀 재우게 된 계기는 가벼웠다. 나보다 50일 일찍 아기를 낳은 회사 동기 오빠네가 수면교육을 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집 아기도 배앓이를 거치며 수면이 쉽지 않아 밤새 아가를 안아줘야 했었단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은 이 악물고 수면교육을 해보자 맘먹었는데 일주일 만에 성공하여 이제는 눕혀 재우기+통잠 재우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 그 얘길 듣고 우리 든든이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두 시간은 든든이와 씨름을 할 각오로 냅다 눕혔는데, 웬걸 20분 만에 잠이 들었다!

물론 쉽진 않았다. 많이 울었고 딸랑이, 튤립 사운드북, 쪽쪽이 등 온갖 것들을 동원해서 눕혀 달래 보았다. 그 후론 나도 자신감이 붙어 겁먹지 않고 든든이를 눕히게 되었고, 든든이도 어떤 때는 아기띠에 있을 때보다 침대에 누웠을 때 더 편히 잠을 이루었다.


덕분에 이젠 자유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집안일은 기본이고 제법 내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어, 고대하던 내 공간도 드디어 만들었다! 작은 원형 테이블을 사서 있던 조명과 화분을 배치해 제법 예쁜 공간이 되었다. 이젠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끄적인다.


물론 지금도 '눕기 싫다 안아달라' 강하게 요구하는 때에는 못 이기는 척 그냥 안아 재우다가 슬쩍 눕힌다. 오늘처럼 피곤한 날엔, 나도 남편에게 슬쩍 안겨 충전을 하는데 우리 아가도 그렇겠지 생각한다. 어른처럼 냅다 누워 혼자 자는 경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줄 알았는데,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몸만 자란 게 아니라 마음도 쑥쑥 자란 우리 든든이었다.

그걸 모르고 겁 많은 엄마는 그저 아기를 안아 재우며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든든이에게 부모로서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음을 믿고 지지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구나 싶다.


세 번째로는 매번 냅다 울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전엔 매번 냅다 울었다. 가끔은 은은하게, 가끔은 자지러지게 우는 든든이를 달래며 '도대체 왜 우는 걸까' 끊임없이 살피고 추측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아야 했다.

엄마는 이제야 제법 눈치가 빤해졌는데, 든든이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 바운서에 눕혔다가도 싫다고 울어버리면 바로 다시 안아줘야 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장난감으로 주의를 돌리면 그것에 만족하고 제법 잘 버티며 누워있는다. 계속 누워있기 싫으면 한참을 낑낑대고 칭얼댈 뿐, 전처럼 울음으로 나를 찾진 않는다. 덕분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대신 아이를 조금 더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아졌다.(미안해, 든든아.)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심적인 스트레스도 감해지고 나니, 큰 산을 넘었다는 성취감에 남편과도 묘한 동지애가 생기고 더 애틋해졌다. 끊임없이 하고 싶은 걸 하라던 남편의 말이 머리에 맴돌며, 나는 어떤 것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지 고민해 본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글을 쓰자 맘을 먹고, 쏜살같이 지나는 이 시간들을 붙잡고자 이렇게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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