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말말말

육아가 즐거운 순간

by 이현

우리 아가는 말이 제법 빠른 편인 것 같다. 언제 처음 '엄마'를 말했는가 하면, 딱 7개월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아빠'는 언제쯤 할까?"

나와 남편은 내기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한 달 후쯤 일거라고 했고, 나는 2주 뒤면 할 것 같다고 했다. 아기는 일주일 만에 '아빠'를 불렀다.

신생아 시절 든든이는 잘 웃지 않는 아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회사 동기 오빠네 아들은 침대 위 모빌만 보고도 잘만 웃던데, 우리 아기는 자못 과묵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웃지 않는 아기'에 대해 열심히 검색했더랬다. 심지어 옹알이도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엄마'를 불러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그 후로 할머니, 할아버지, 코아(할머니댁 고양이 이름) 등 호칭, 이름 등으로 단어를 넓혀갔다. 하나의 단어로만 의사를 전달하던 아기가 처음 두 단어를 이어 말한 건 16개월쯤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어이없게도 '아빠 코딱지'였다. 아기는 그게 뭐가 그리 웃긴지 '아빠 코딱지'하고는 꺄르르르 웃고, 한번 더 말하고 다시 꺄르르 웃었다. 나와 남편은 아기 옆에서 같이 웃음보가 터졌다.

"그 말이 그렇게 웃겨?"

아기는 코딱지라는 말도 웃기지만, 두 단어를 이어 붙인 스스로가 대견해 견딜 수 없는 모양새였다.

"아빠 코딱지! 엄마 코딱지!"

하고는 또 꺄르르르. 내 반경 안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별거 아닌 것으로 꺄르르하고 무해하게 웃는 생명체가 생겼다.


아기는 20개월 중반쯤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이런저런 동요를 꾸준히 들려주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동요 한곡씩을 완창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기가 처음으로 부른 동요는 '섬집 아기'이다. 정작 엄마인 나는 1절밖에 모르는데, 아빠에게 배운 아가는 2절까지도 부른다.

처음 아빠가 '섬집 아기'를 불러주었을 때, 아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와 남편은 그런 아기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 또한 어린 시절, 단조의 노래를 좋아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처음으로 좋다고 느꼈던 노래는 '후레쉬맨'의 오프닝곡이었다. 그전에도 아기에게 다양한 동요들을 많이 불러주었었는데, '섬집 아기'가 가장 마음이 들었나 보다. 아기가 처음으로 완곡하는 동요가 되었다.

22개월에 들어선 지금, 아기는 대여섯 곡의 동요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밤잠을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아는 노래를 모두 완창하고 나서야 후련해하며 잠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말과 행동, 기분까지 그대로 복사해서 우리의 분신처럼 졸졸 따라만 다니던 아가였다. 그랬던 아기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니야. 든든이가 할 거야."이다. 그리고 사은품으로는 "든든이가 했어요."가 있다.

아기는 도움 없이 본인이 스스로 하기를 원하고, 성공했을 시 재빨리 엄마, 아빠에게 달려와 본인의 성과를 자랑한다. 엄마, 아빠는 "오구오구 우리 아가."로 시작해 아가의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칭찬을 해 주어야 한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어엿한 하나의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때때로 다음 일정에 맞춰 시간이 촉박할 때, 스스로 하겠다며 마냥 고집을 부리면 부모는 아주 속이 터지고 단전에서부터 화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이 일시적이고 별거 아닌 나의 감정(답답함)을 견뎌내는 동안, 아기는 사람으로서 더 큰 성장을 하고 있는 거라 매번 되새기며 그 순간을 참아낸다. 그리고 아기가 얼마나 알아들을지는 미지수이나, 사람 대 사람으로 여기고 아기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해 준다.

"든든아, 지금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 되어서 든든이 혼자 계속 양치하고 있을 수가 없어.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든든이가 오길 기다리고 있대. 그러니 엄마가 얼른 양치 마저 해줄게."

엄마의 말을 다 이해했는지는 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 구구절절한 설명이 5할은 먹혀든다. 10번 중에 5번은 엄마 말에 수긍을 해 주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매우 기특하다. 아직 22개월이니까..


얼마 전 '감정 호텔'이라는 책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감정 호텔'의 첫 손님은 '슬픔'이었다. 책 속의 슬픔이는 앉아있는 욕조가 넘치도록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내가 물었다.

"든든이는 마음 안에 슬픔이가 언제 있었어?"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아기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기는 잠깐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언제야?"

"어린이집에 있을 때."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지 한 달 반정도가 되었는데, 잘 적응하는가 싶더니 감기를 앓으면서 컨디션이 나빠져 부쩍 아침에 엄마와 헤어지기 힘들어했다. 아침마다 울고불고 난리인 아기를 선생님에게 안겨주고 나와서는 나도 눈물을 참지 못했었다.

'감정 호텔'을 처음 읽은 날. 밤잠을 자려 아기와 함께 누웠는데 아기가 뜬금없이,

"든든이 마음속에 엄마가 있어."

아기는 저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매우 놀랐다.

"그래? 든든이 마음에 엄마가 있어?"

"응. 엄마 사랑해요."

아, 육아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육아는 얼마나 엄마의 마음을 벅차게 만드는가. 세상 살며 새롭게 알게 되는 고양감이 이 나이에 또 있다니.

"엄마도 든든이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요즘 아기와 가장 많이 수다를 떠는 시간은 밤잠을 자기 전이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무얼 했는지 훑어보고 어떤 게 가장 맛있었는지, 어떤 일이 가장 즐거웠는지를 물어본다. 아기는 오늘 먹지도 않은 것, 하지도 않은 것을 대답할 때가 많다. 그래서 본인이 적당히 아는 단어나 생각나는 것을 무작위로 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먼저 불쑥 꺼내는 때도 많다.

"속상했어."

"뭐가 속상했어?"

"든든이 인형을 선생님이 ㅇㅇ이한테 빌려줘서 속상했어. 빌려주기 싫었어."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다니. 아기의 인지능력에 놀랐지만 한편으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난감했다. 이럴 땐 뭐라고 답을 해줘야 좋을까. 마침 오은영 선생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던 게 생각이 났다.

'맞아. 공감을 먼저 해줘야 한다고 했지.'

나는 고민을 멈추고 답을 했다.

"그랬구나. 든든이가 속상했구나. 그럴 수 있지. 그치만 친구한테 빌려준 건 잘했어. 그래서 ㅇㅇ이가 든든이한테 고맙대. 인형 빌려줘서 고맙다고 그랬어. 든든이 잘한 거야. 기특해."

나는 나름대로 잘 대답을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만으론 아기 마음의 속상함이 가시질 않았나 보다. 그 후로 아기는 몇 주째 ㅇㅇ이에게 인형을 빌려줘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밤마다 반복한다. 여전히 뭐라 대답해 주어야 아기가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다. 아기가 말이 늘어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또 다른 육아 과제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어젯밤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땅만 보고 걷던 아기가 불쑥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한테 서운했어."

남편과 나는 그저 아기가 장난친다고만 생각했다. 아기가 서운하다고 하면 엄마나 아빠가 '힝!' 하고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반응을 보려고 그냥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되물어 보았다.

"엄마한테 뭐가 서운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나와 남편을 둘 다 놀라게 했다.

"엄마가 든든이한테 '안돼. 이건 엄마 거야.'라고 해서 서운했어."

'장난이 아니었구나. 정말로 이유가 있었고, 그게 아기 마음에 서운한 감정으로 남아있었구나.'

나도 남편도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니. 게다가 혼자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무언가가 생기다니. 이렇게 전해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상황을 겪는 부모에게 아기의 성장과정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든든이 마음 풀리게 엄마가 어부바해줄까?"

나에겐 여전히 작디작은 15kg의 아기가 냅다 내 등에 업힌다.

"엄마한테 업히니까 마음이 좀 풀려?"

아기는 대답이 없다. 내가 말을 이었다.

"엄마가 요즘 든든이한테 안된다고 많이 얘기해서 미안해. 엄마는 든든이가 다치거나 엄마 물건이 망가질까 봐 그런 말을 한 거였는데, 든든이가 서운했다면 엄마가 그런 말을 좀 줄이도록 노력할게."

"..."

더 이상의 대답은 없다. 그 후의 대화까지 이어질 언어능력은 아직이다. 남편이 옆에서 아기에게 말했다.

"엄마 등에 업혀있으니까 좋아?"

아기는 별거 아닌 질문에 꺄르르 웃으며 대답한다.

"응! 좋아."

엄마 등에 업히는 걸 좋아하는 아기는, 이 상황이 만족스러우므로 마음이 제법 누그러진 모양새다.

인터넷의 어느 글에서 엄마가 딸에게 '다행이다. 떡볶이로 가려지는 슬픔이라서. 엄마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이하동문이다. 다행이지. 아직 업어주는 것으로 달래 줄 수 있는 서운함이라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산책하던 중 공원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흥이 나 신나게 춤을 추던 아기가 돌연 엄마, 아빠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잘했어요!"

아기는 대단한 뜻이 없는 말이었을 테다. 하지만 나에겐 연휴 내내 아기와 열심히 놀아준 부모를 칭찬하는 듯 들렸다. 연휴 마지막 날 밤에 듣기에 매우 시기적절한 대사여서, 마치 짧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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