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름의 끝자락. 가을 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때.
그즈음에 종일 내리는 비가 있습니다.
그 비는 계절의 커튼콜이 되어 지리한 여름을 물리고, 가을을 성큼 불러들입니다.
아기와 처음 맞는 가을입니다.
차가운 외풍이 이중창마저 뚫고 들어왔습니다. 난방이 언제부터 공급되나 애타게 기다리던 날이었지요. 내 몸이 추위에 부르르 떨리는 탓에 자연스레 도톰한 이불을 아기와 나눠 덮고 낮잠을 청했습니다. 뒤통수가 땀으로 축축해진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며 칭얼대었지요. 안아 올린 아기는 이불 안에서 손끝, 발끝까지 따끈해져 있었습니다. 매서운 겨울, 산 넘어 학교 가는 길이 너무 추워서 짱돌을 아궁이에 데웠다가 주머니에 넣고 갔더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불 밖, 여전히 싸늘한 공기가 방안 가득했습니다. 따끈하게 데워진 아가를 품에 꼬옥 안고 있자니 매끈한 짱돌이 손끝에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몽글몽글한 어떤 행복감이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아기를 안고 얼른 서재로 달려가, 남편에게 뜨끈한 행복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육아 중 엄마가 행복해지는 팁'이면 좋겠지만, 아기는 20~24도 정도로 시원하게 재워야 안전합니다. 허허.)
저에게 육아는 한순간도 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열 달 전 2리터짜리 생수 두 통을 베란다에서 꺼내오며, '내 자그마한 딸이 생수 두 통의 무게만큼도 안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꼬물이를 마주할 땐, 매 순간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입김조차 한번 잘못 불면, 휙 날아가버릴 것 같았지요. 그맘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기와 관련된 악몽을 꾸곤 했습니다. 불안감을 다스리지 못한 날들이었습니다.
아기와 눈 맞춤이 가능해지고 아기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좇을 무렵. 저는 아기 눈에 어떤 엄마로 보이고 싶은지, 아기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A라는 입력값에 B를 출력해야 좋은 엄마다.'라는 식의 인터넷에 넘쳐나는 수많은 지침서 사이에서 허우적댔습니다. 그러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불변하는 진리를 마주합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구나."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단점들 중에서도 눈 감아 줄 만한 것은 무엇인지. 반면에 스스로도 치명적이라 생각하여 '절대 내 아이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자기 객관화를 하려고 노력하였고, 지금도 그 노력은 진행 중입니다.
요즘은 또르르 말린 고사리 같은 주먹에서 검지손가락이 뻗어 나와 여기저기를 짚어댑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자기 의지가 생겨, 본인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땐 양껏 짜증을 내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참을성이라는 단어의 실질적 모습과 그것의 발생과 발전에 대해 고민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백명의 엄마가 있다면 육아는 백개 이상의 모습이 있을 테지요. 교집합의 순간도 있고, 차집합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공감도 있고 반감도 있을 것입니다. 거창한 의도를 갖고 육아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육아 선배님들을 모셔 두고, 고작 10개월짜리 엄마가 거창할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로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육아의 날들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적어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두 달 전 아기의 예쁜 모습들이 서서히 잊히는 게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발을 내딛을 방향조차 정하지 못하고, 사막 한복판에 서 있는 듯 한 기분'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그런 사람 여기도 하나 있습니다.' 외쳐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외에 여러 이유들도 모두 차치하고, 아무렴 어떻습니까.
뭐라도 적어두었다 훗날 종이로 엮으면, 우리 딸 세상살이하다 힘들 때 슬쩍 꺼내 줄 수 있겠지요.
짧게라도 꾸준히 적어보자는 다짐으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