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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an 16. 2023

허벅지에 생긴 알록달록한 멍에 대한 고찰

혹은 나이값에 대한 고찰






달리기에 자부심이 있다.

항상 반대표 계주 선수로 달렸던 나다.

바통을 이어받아서 튕겨나가듯 달려서 앞서던 다른 팀을 따라잡으면 쏟아지던 환호가 좋았다.


그리고 약 20년

지금은 전력질주를 하면 내 영혼과 육체의 분리 경험한다.

아직도 그 시절 가벼운 나인줄 착각하고 힘을 다해 달려나가보지만 의욕만 앞서나갈 뿐 몸은 저만치 뒤에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몸은 한껏 무거워졌고 그 무게로  앞서나가는 나를(나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를) 잡아당긴다.

기억 속 날렵했던 나와 지금의 내 신체 능력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데 매번 까먹는다.

지금의 달리기는 그시절 날렵함과 사뭇 다른 허우적거림에 가깝다.


결국 크게 한번 다쳤었다.

큰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달리기부심이 작동했다. 기를 쓰고 달리다가 내 몸뚱이의 버퍼링 때문에 대차게 넘어져 상처가 생겼고 나이 때문인지 쉬 낫지 않아서 진물까지 생기며 고생을 했드랬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주려고 소박한 신년 선물을 준비했었다.

한분이 다음 일정 때문에 먼저 일어섰고 미처 선물을 전달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뒤따라 나갔다.

별거 아닌 선물이라 겸연쩍은 마음에 선물만 투척하고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눈 앞에 데크가 제법 단차가 있었지만 가볍게 훌쩍 넘으려 했고, 난 분명 넘었는데, 내 다리는 걸려있었다.

철푸덕 !



실제 가게 데크. 분명 내 허벅지 높이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무척 얕아보여서 당황스럽다 (네이버 지도 캡쳐)





알록달록한 멍이 생겼다.

처음에는 피부 표면이 꾀 부었으나 붓기는 곧  가라앉았다.

멍색은 매일 변한다.

처음 검기만 했던 멍은 지금은 보랏빛 또는 연한 초록색이다.

점차 가운데부터 색이 돌아오는 것 같고 주변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인다.



씻을 때마다 이 멍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도 하고, 상황이 우습기도 하다.

이팔청순인 줄 알고 까불며 뛰어오르다가, 오르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다.

신년 초부터 알록달록한 멍을 갖게 됐다.

내 몸은 성실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정신은 신체 나이를 매번 잊고 20년전 사용법으로 작동시키다가 사고를 당한다.






문득 나이에 대해 생각한다.

마흔을 넘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다.

신체는 하루하루 착실하게 노화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정신은 물색없이 나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비겁하게도 상황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


도전 앞에서는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며 뒤로 물러난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요구받으면 아직 그럴만한 깜냥이 없다며 마다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너보다 오래 살았다고 유세하며 나이로 부족한 설득력을 덮으려한다.

엄마 앞에 가서는 아직도 철부지 인양 하루 종일 챙김을 받고 어리광을 부린다.

어리고 싶었다 나이 대접 받고 싶었다 오락가락하니 참 지조가 없다.


멍은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생각보다 오래가는 멍을 지켜보다 43 (아니 다시 42인가) 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허벅지에 알록달한 멍을 만들어 준 내 정신과 신체의 차를 굳이 없애지 말아야겠다 심했다.

차라리 그시절 철부지를 소환해보려 한다.

그땐 뭐든 시도했고 뭐든 궁금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냐는 용기있는 도전을 이어가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자
주저하지 말고 그냥 하자


알록달록한 멍이 또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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