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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Dec 23. 2022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을 찍은 속내

플랙스하고 싶어서





고리타분하게 독서의 중요성을 논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이곳에 나만 책을 읽고 있다고 우쭐하고 싶을 뿐이다.

자랑하려고 찍은 사진이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세계에 빠졌다가 고개를 들면 멀쩡했던 내가 초라해진다.


난 가방이 세 개다. 동생이 쓰다가 내어준 보세 가죽 가방은 출근용이다. 7만 원 주고 산 백팩은 주로 아이들과 여행 갈 때 쓴다. 스마트폰만 들고 동네에 나갈 때는 포인트 2000원으로 득템 한 예스24 굿즈 가방을 사용한다. 이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불만 없이 사용하다가도 스마트폰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다 고개를 들어서 보면 초라하게 시들어있다. 수백만 원하는 가방을 남편에게 선물 받은 이도 있고, 신상을 샀다며 언박싱하는 이도 있으니 이름 없는 저렴이 내 가방들이 알아서 주눅 들어 버린다. 가방이 나인 거 같다. 괜히 보잘것 없어진다.


방학이 다가오니 어디 어디 한 달 살러 간다는 공항 사진이 늘어났다. 난 휴직의 끝자락이라 생활비가 모자라서 집담보 대출을(이미 가득 소유하고 있다) 추가로 받았는데 다들 여유가 있어 보여서 눈이 시게 부럽다. 비행기 타고 싶다는 아들에게 시원하게 대답을 못해주고 얼버무리고 있던 터라 더 하다. 기왕 받는 대출 더 땡기지 못한 걸 후회했다.

 

난 미용실에 1년에 두 번 간다. 한 번은 새 학년 시작 전에 파마를 위해서 가고 반년 정도 지나 지저분해지면 커트하기 위해 또 한번 간다. 머리카락 손질에 드는 돈이 무척 아깝다. 미용사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으니 아끼려는 것이다. 궁상이 아니라 알뜰한 것이라고 자부하며 살다가 때깔 나게 옷 빼입고 백화점 쇼핑하는 그들을 보면 내 씀씀이는 궁상스럽기까지 하다.


나도 플렉스 할 게 뭐 없을까?

나도 자랑하고 싶어서 두리번거린다.






친구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걸 찍어서 자랑해야지 싶었다.

품위 있게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나를 포장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팍팍한 일상, 평소 품위 없는 언행, 궁상스러운 나를 책을 찍어서 가려놓는다.  재력은 없지만 책 읽는 모습으로 나를 포장해서 SNS에 전시한다.

 

SNS가 뭐라고 이러는 걸까

이제 일주일 있으면 43이다.

젠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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