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 우편함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검정 회색의 니트. 아직도 폭닥하고 따스하다.
주말 저녁의 홍대만큼 피곤해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최저가.
무언가를 알아보고 비교하고 쟁취해낸 최저가만큼 순간 뒷골이 저릿해지는 단어는 드물다. 나는 그럭저럭 부지런한 사람이지만 가격, 리뷰, 실용성 등을 촘촘하게 비교하고 무언가를 구매한 이후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는지를 짚어내는 정도의 열정은 없다.
보통은 물건이야 어차피 소모품인데 비싸게 사든 싸게 사든 품질만 좋으면 그만 아닌가 하는 적당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럭저럭 원하는 디자인 정도를 위주로 고르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면 포기,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제품이라면 또 포기, 어쩌다 안 좋은 리뷰를 보면 그냥 그 쇼핑 창을 닫아버린다. 그리곤 또 몇 주, 몇 개월 뒤에 또 필요성을 느껴 그 제품을 위한 쇼핑창 앞에서 이리저리 망설인다.
최저가라는 말 앞에선 자주 무너졌다. 무슨 세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새학기 맞이, 추석 맞이, 설 맞이, 연말 맞이, 주말 특가 365일 중에 운이 안 좋아 정가로 산 날이면 한없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최저가의 향연... 피곤하지 그지 없다.
얼마 전엔 모 쇼핑 플랫폼에서 블랙 프라이데이가 끝나면 18,000원 비싸게 사게 된다는 알림을 띄웠다. 아 이거 굉장한 마케팅이구나 싶었다. 인간의 가냘픈 마음엔 알림이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진다. 이만큼 싸게 팔고 있는데도 안 사? 네가 이러고도 안 사고 배겨? 클릭하려는 순간 또 다른 팝업창이 최저가를 안내한다. 고객님 이런 옷을 찾고 계시군요. 무섭다 무서워 알고리즘.
옷에 대해선 할 말이 꽤 많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계절마다 나이 때마다 입는 스타일이 바뀐 탓도 있지만 흥미를 잃은 옷들은 옷장에 처박혀있거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둔 탓도 있다. 알바비가 곧 생활비였던 대학생 때는 길거리에서 옷을 많이 샀다. 그렇게 산 옷들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지는 아마 그때도 알았을 것이다. 어떻게 바느질을 해놓은 건지 세탁 한 번에 올이 주르륵 풀려나가고 금방 보풀이 일어 자글자글해진 옷감을 무시했다. 빈약한 지갑 사정에는 도리가 없다는 게 가장 좋은 핑계였다.
행거에 걸린 겨울 옷들. 올해 산 옷은 하나도 없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 옷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본가에서 자취방으로 자취방에서 다시 본가로 가는 옷상자를 보면서 느꼈을까.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의 무게 때문에 행거가 느닷없이 무너졌을 때 느꼈을까.
옷을 계속 버리는데 왜 늘었는지 고민했다. 답은 간단하지. 그만큼 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옷을 사는 걸 멈췄다. 지구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느날 이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진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지.
ESG팀에서 일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옷을 사는 횟수를 꾸준히 줄였다. 빈티지샵이나 중고의류를 전전하면서 옷을 사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열정이 너무 필요한 일이라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았다. 꼼꼼히 고민하고 산 옷을 최대한 오래 입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의 작별에 인색하게 구는 편이니 좋아하는 옷을 신중하게 사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니트는 벌써 나와 10년째 함께 하고 있다. 조금 보풀이 일어나긴 했어도 헤지지도 않고 구멍도 나지 않고 아주 튼튼하게 내 곁을 지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산 패딩도 겨울마다 바깥바람을 쐰다. 색이 좀 바래고 조금 낡았어도 아직도 지나치게 튼튼하다. 엄마는 그 패딩을 볼 때마다 그래서 옷은 좋은 걸 사는 거라며 내심 뿌듯한 얼굴을 한다.
오래 입을 수 있는 괜찮은 옷을 사기 위해서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자세히 본다. 덕분에 미간엔 주름이 조금 늘었나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조금 더 윤리적으로 생산됐고 조금 덜 지구를 해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하고자 노력하는 중인 내 모습이 좀 더 좋다. 조금 더 끈기를 갖고 비교하면서 최저가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잠근다.
이번 겨울은 12월 중순에도 패딩도 코트도 필요없는 날씨가 일주일 정도 지속됐다. 낮 기온 10도 이상을 오가는 따뜻한 겨울. 겨울이 따뜻해서 좋다는 사람보다 겨울이 이래도 되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좀 많아진 것 같다. 그럴 때면 예전에 내가 버렸던 수많은 옷들이 생각난다. 그때 버려진 옷들이 계절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12월의 따뜻한 겨울에 일조한 소비였겠지 싶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언제나 좋다. 시작도 전에 마음을 꺾어버리는 팩트는 필요없을 때가 있다. 이것이 내가 기후 기사를 쓰면서 배운 점이다. 가끔은 모든 걸 덮어놓은 응원이 더 쓸모있다.
P.s 내 이마에 주름이 생기는 게 지구에 주름이 잡히는 것보단 양호한 것 같다.